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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불행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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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불행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 이환태
  • 승인 2017.04.08 12: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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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환태의 인문학여행] <8>존 프리슬리의 ‘어느 검사의 방문’

세월호 참사 3주기다. 안타깝기 그지없는 사건이었다. 수학여행의 들뜬 마음도 잠시, 기울어진 채 가라앉는 그 배에서 죽음을 기다리며 그 짧은 인생을 왜 그토록 허무하게 마감해야 하는지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을 그 아이들, 그들의 두려움과 고통과 분노와 좌절은 생각만 해도 남의 일 같지 않다.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하는 것은 사실상 나라 전체가 그 사고의 원인 제공자였다는 것이다. 평상시 안전에 조금만 더 신경을 썼더라면, 조금만 더 일찍 구조했더라면, 선박을 관리하고 점검하는 기관이 올바로 그 기능을 했더라면, 그게 올바로 기능하도록 정부가 더 잘 관리했더라면, 정부가 더 잘 관리하도록 우리가 제대로 요구했더라면….


누군가의 불행은 사실상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영국의 작가 존 프리슬리(J. B. Priestley)가 쓴 <어느 검사의 방문>(An Inspector Calls)이란 작품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영국 중북부 브럼리(Brumley)의 어느 안락한 집에 벌링(Birling) 일가가 살고 있다. 수백 명의 노동자가 일하는 공장주이자 지역 정치인인 아서(Arthur)는 딸 쉴라(Sheila)가 경쟁업체 사장의 아들 제럴드 크로프트(Gerald Croft)와 약혼한 것을 매우 흡족해 한다. 그 결혼을 통해 두 회사가 더욱 번창할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딸의 약혼을 축하하기 위한 만찬은 행복감이 넘쳐흐른다. 화려하게 장식된 방에서 긴 식탁을 가운데에 두고 가족 모두가 둘러 앉아 샴페인을 곁들인 저녁식사를 즐기고 있다. 그때 난데없이 굴(Goole)이란 이름의 검사가 불쑥 찾아온다. 이바 스미스(Eva Smith)란 여자가 음독자살을 했는데, 일기에 이 가족이 언급되어 있어 조사를 하겠다는 것이다.

 

 

아서 벌링은 이바가 자기와는 상관없는 여자라 생각하고 자신 있게 검사의 심문에 응하지만, 결국 그녀가 몇 년 전 임금착취에 항의하다 자신의 회사에서 해고된 여자임을 알게 된다. 그래도 그게 오래 전의 일이니 지금의 사건과는 무관하다 생각하여 안심하려는 순간, 검사는 그의 딸 쉴라에게 심문을 계속한다.


쉴라는 어느 날 백화점에서 물건을 고르다가 그곳 점원을 혼낸 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점원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하층민인 그녀가 자신보다 예쁜 것에 질투가 났기 때문이었음을 고백한다. 그 점원이 바로 이바 스미스였는데, 그녀는 결국 그 일로 그곳에서도 해고되었음이 밝혀진다.


연이은 실직으로 하루하루 살아가기 힘든 이바 스미스의 처지는 먹을 것은 물론 잠잘 곳조차 없을 정도로 비참하다. 이바가 일자리를 얻기 위해 동분서주할 때 어떤 남자한테 희롱을 당하는데, 그 장면을 목격하고 그녀를 구해준 남자가 바로 쉴라의 약혼자 제럴드다.


그는 이바 스미스를 측은히 여겨 자기 소유의 아파트에 살게 하지만, 그곳을 자주 방문하면서 처음의 순수한 의도는 희석되고, 그녀를 정부(情婦)로 삼게 된다. 그런데 쉴라와의 결혼을 위해 제럴드는 그녀를 버렸다. 가명을 썼기 때문에 그게 이바 스미스인 줄 몰랐지만, 검사는 그게 동일인임을 확인시켜준다.


다음으로는 그 집의 안주인 시블(Sybil)이 심문 대상이 된다. 상류층의 귀부인이자 어느 자선단체를 책임지고 있고,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살고 있다는 자부심이 지나치다 못해 오만하기까지 한 시블은, 심문 결과 혼전 임신에다가 무일푼인 절망적인 상태에서 도움을 청하러 온 이바 스미스를 거짓말쟁이로 몰아서 내쳤던 적이 있음이 밝혀진다.


마지막으로, 그 집의 아들 에릭(Eric)은 이바 스미스를 임신시킨 장본인이다. 둘은 사랑하는 사이지만, 사랑에도 돈이 필요한 법. 아버지로부터 넉넉한 돈을 타낼 수 없었던 에릭은 아버지 사무실에서 돈을 훔쳐서까지 이바에게 주지만, 그 돈을 받기에는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 이바는 생활고에 시달리다 결국 음독자살을 선택한 것이다. 도움을 청하러 왔던 이바를 몰인정하게 내쳐서 결국 자신의 손자마저 죽게 한 어머니를 에릭이 원망하면서, 이미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행복했던 만찬의 분위기는 최악의 상태가 된다.


그 순간 잠시 밖에 나갔던 제럴드가 어느 경관을 만나 굴이란 검사에 대해 물어보는데, 놀랍게도 검찰청엔 그런 사람이 없다는 말을 듣는다. 급히 돌아와 전화로 그 사실을 재차 확인하고 요양소에도 전화해보지만, 굴이란 검사도 음독자살 사고도 없었음이 확인된다. 모든 것이 사실이 아님을 확인한 순간, 가족들은 안도하며 아무 일 없었던 듯이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려 한다. 그때 음독자살 사건 때문에 조사차 방문하겠다며 경찰서에서 전화가 걸려온다. 그 전화는, 이 이야기가 비록 허구지만 허구로만 생각지 말라는 작가의 경고처럼 들린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촘촘한 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산다. 깊은 산속에 은둔한다 해도 이 관계망을 피할 순 없다. 그가 사람들 속에 있었더라면 막을 수 있었을 어떤 불행한 일이 그의 부재로 인해서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 3주기다. 희생자들에 대한 진정한 애도는 이 땅에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책임의 일단(一端)이 우리에게 있다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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