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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이 약화된 틈에서 광기가 꿈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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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이 약화된 틈에서 광기가 꿈틀
  • 박한표
  • 승인 2017.03.24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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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표의 그리스·로마신화 읽기] <15-3>디오니소스 신앙의 확산

합리주의를 신봉하는 그리스인들이 소중히 여기는 대표적인 신은 이성과 절제의 신 아폴론이었다. 도취와 광기의 신 디오니소스는 그리스인들에게 낯선 신이었다. 더구나 인간의 몸에서 태어난 특이한 신분 탓에 가장 늦게 올림포스 12신의 반열에 오른다.


헤라의 질투는 디오니소스를 미치게 만들고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는 방랑자로 살도록 했다. 디오니소스는 아시아 지방까지 갔다. 후에 디오니소스는 인도 지방의 니사와 트라키아 지방을 거쳐 그리스 본토로 되돌아온다.


그 여행에는 술의 전승 과정에서 부딪히는 어려움과 술의 위험성을 말해주는 일련의 에피소드가 동반된다.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바쿠스의 여신도>는 소아시아의 니사에서 태어난 디오니소스가 자신의 신앙을 전파하면서 고향인 그리스 본토의 테바이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겪는 박해와 극복 과정을 그리고 있다.


디오니소스는 아티카 지방에서 자신을 친절하게 환대해준 마을 농부 이카리오스(Ikarios)에게 포도 재배법과 와인 담그는 기술을 가르쳐준다.


이카리오스는 신에게서 받은 은혜를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줬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를 물에 타지 않고 마셨기 때문에 심하게 취해 버렸다. 마을 사람들은 술도, ‘술에 취한다’는 것도 모르는 상태였다. 마을 사람들은 처음으로 술을 마신 후 정신이 몽롱해지는 것에 놀라 독을 탔다고 생각하여 이카리오스를 죽였다.


그러자 마을에 전염병이 돌고, 마을 처녀들이 하나둘 미쳐갔다. 이것은 디오니소스 신이 내린 벌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신탁을 통해 진실을 알아내고 이때부터 디오니소스 신을 숭배하게 됐다.

 

 

디오니소스 신앙은 서민들을 중심으로 열광적으로 퍼져나갔지만, 한편에서는 야만적인 신앙이라 하여 귀족들에게 박해를 받았다. 그러나 디오니소스는 자신을 섬기지 않는 자에게는 엄격한 벌을 내려 신의 권능을 보여줬다. 디오니소스의 고향인 테바이의 왕 펜테우스(Pentheus)가 도취와 광기의 전도사 디오니소스와 신도들을 가혹하게 박해하다가 파멸을 맞은 일화가 대표적이다.


여신도들은 테바이의 키타이론 산을 광기에 찬 모습으로 휘젓고 다녔고, 왕가의 사람들도 광적으로 숭배하기 시작했다. 테바이 왕 펜테우스는 이 괴상하고 음란한 신흥 종교가 마음에 들지 않아 탄압을 가했다.


그 무렵 테바이에 나타난 디오니소스는 펜테우스에게 광란의 축제를 보러 가자고 부추겼다. 디오니소스의 안내를 받아 키타이론을 찾은 펜테우스는 여자들이 광란하는 현장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했다. 여자들은 지팡이를 들고 짐승을 죽이면서 춤을 추고 있었는데, 그의 눈에는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그 때 나무 위에서 훔쳐보고 있던 펜테우스가 여자들에 의해 발각되자 디오니소스는 여자들에게 광기를 불어넣었다. 광기에 찬 여자들은 펜테우스가 있는 나무 밑으로 몰려들어 모두 매달린 채 나무를 흔들어댔다. 그녀들은 마침내 그 큰 나무를 쓰러뜨리고 비명을 지르는 펜테우스를 붙잡았다. 그리고는 그를 축제의 제물로 바쳐진 짐승처럼 갈가리 찢어 죽임으로써 처절하게 복수한다. 그 선두에 서 있던 여자가 바로 펜테우스의 어머니 아가베였다. 그는 신을 업신여긴 대가를 치른 것이다.


트라키아의 왕 리쿠르고스(Lykrourgos)도 디오니소스를 박해하다 파탄에 빠진 인물이다. 그는 마이나데스(디오니소스를 추종하는 여신도)들을 마구 때리고 감옥에 가뒀다. 그러자 디오니소스는 할머니 레아(제우스의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리쿠르고스를 미치게 만들었다. 리쿠르고스는 이때부터 자신이 항상 포도덩굴을 돌보고 있다는 환상에 사로잡혔다. 그는 포도덩굴의 가지치기를 한다며 아들 드리아스의 목을 쳐 죽이고, 죽은 아들의 손발까지 잘라버렸다.


이에 놀란 신들이 트라키아에 저주를 퍼부어 이 땅에서는 아무것도 자라지 않게 되었다. 신하들은 저주를 풀기 위해 광기에 사로잡힌 왕을 산으로 끌고 가 야생마에게 짓밟혀 죽게 만들었다. 다른 이야기에서는 리쿠르고스가 아들이 아닌 자기 팔다리를 잘라 스스로 죽었다고도 한다.

 

 

영웅 테세우스에게 버림받은 크레타의 공주 아리아드네와 결혼했다는 설도 술 문화가 바다 건너까지 전승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디오니소스는 각지에서 문제를 일으키면서도 서서히 세력을 키워 이윽고 그리스 전역의 주민들에게 숭배를 받았다. 술로 인한 도취와 해방을 맞본 사람들이 그를 열렬히 따랐기 때문이다. 그것은 디오니소스 축제라는 광란의 의식으로 나타났다.


디오니소스는 아폴론과 대립되는 신이다. 아폴론의 이성은 조형의지다. 그것은 일정한 형식과 틀을 형성한다. 과도함을 거부한다. 무엇이든 넘쳐서도 안 되고, 너무 부족해서도 안 된다. 아폴론의 이성은 항상 절제된 세계를 지향한다.


반면 디오니소스의 광기는 해체 의지, 자유의지다. 그것은 아폴론의 이성이 만들어 놓은 형식과 틀을 깨뜨려버린다. 무한과 극한의 세계로 휘몰아친다. 그리하여 아폴론의 이성이 빠져들 수 있는 도식화, 즉 시스템을 거칠게 무너뜨린다.


그래서 디오니소스 축제는 한겨울 밤에 거행된다. 디오니소스의 본질이 밝음이 아니라 어두움에 있어서다. 겨울과 밤은 태양(아폴론)의 힘이 약해지는 때다. 아폴론의 밝음이 자리를 비운 사이 디오니소스의 어둠이 다가온다. 아폴론의 이성이 약화되는 틈을 타 디오니소스의 광기가 꿈틀거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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