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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랑쿠시 예술의 원형 ‘잠들기 전 기도’[이순구의 미술산책] <4>콘스탄틴 브랑쿠시의 ‘잠자는 뮤즈’

예술에서 복잡하고 다단한 방법들이나 무거운 철학을 걸머진 개념들이 버거워질 즈음이면 이 모든 것을 압축시킬 단조로움이 생각나는 법이다. 이를테면 미니멀리즘(minimalism)이다. 우리문화권에서는 선(禪)적인 개념일 것이다.


많은 것을 알고난후 내려놓는다는 것, 또는 극소의 어떤 결론을 취한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많은 것을 취하려고 할 때의 현상을 아귀다툼이라고 한다. 우리는 매일같이 얼마나 많은 욕심을 채우고 있을까.


오늘 생각해 볼 작품은 콘스탄틴 브랑쿠시(Constantin Brancusi 1876~1957)의 <잠자는 뮤즈 Sleeping Muse I, 1909>다.


브랑쿠시는 루마니아 태생으로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다. 여러 번의 가출 전력에 목동, 염색공, 술집종업원 등을 전전했다. 그러면서도 목공예에 관심이 컸다. 한 제조업자가 그를 후원해 부쿠레슈티의 미술학교에 보내줬다. 1904년에는 파리로 건너가 피카소, 막스 자코브, 모딜리아니 등과 어울리면서 본격적인 창작 생활을 시작했다.


이 시기에 그는 입체파의 영향으로 사실적인 요소를 점차 배제하고 순수한 기하학적 형태를 추구한다. 1908년에는 첫 주요작품인 <입맞춤(The Kiss)>을 발표한다. 그 후 그의 작품은 상징적인 추상조각을 이루어 나간다. 이때부터 작품전반의 형태를 단순화하고 추상화시키며 소박한 형태를 추구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다시 사실적인 형태에서 본질적으로 원형화(原形化)됐으며, 씨앗의 형태나 계란의 형태에서 완전한 것을 추구하려고 했다.

 

 

<잠자는 뮤즈(Sleeping Muse I, 1909)>의 계란형 형태는 그의 중요한 표현을 이루며 고요한 잠을 통해 삶의 원인과 과정을 생각하게 한다. 하루의 얽히고설킨 일상을 살고 저녁을 마무리하는 것은 아마도 잠일 것이다. 그 잠아래 선이나 악도 평형으로 내려앉으며 균형을 취하고 나지막한 평온을 되찾을 것이다.


계란형으로 비스듬히 누워있는 형태에 고요히 입을 다물고, 평온히 눈꺼풀을 내린 표정은 세상의 많은 일들을 내려놓고 잠든 여신의 모습이다. 번뇌도 고뇌도 내렸으며, 잡스런 삶을 있게 한 몸뚱이까지 내려놓고, 머리만 고요히 잠든 저 평화를 누가 방해할 수 있을까.


나태주(1945~) 시인은 <잠들기 전 기도>에서 ‘하느님 / 오늘도 하루 / 잘 살고 죽습니다. / 내일 아침 잊지 말고 / 깨워주십시오.’라고 말한다. 이 얼마나 인생의 절박함을 긍정적인 평화로움으로 표현한 것인가. 잠은 한 휴식이며, 꿈이고 미래다.

 

 

브랑쿠시는 그의 원숙기에 만들어진 타원형태의 조각을 ‘눈 먼 사람을 위한 조각’이라고 불렀다. 이는 눈먼 장애인이 만지며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뜻도 있겠지만, 감수성이나 허튼 지식으로 느낄 수 없는 예술의 근원적 순수본질형태를 느끼고 찾고자함이 아닌가 생각된다.


예술은 삶이다. 삶은 순리와 이치로 일상을 사는 것이다. 여행 중에 유럽의 시골풍경이나 오랜 도시의 골목이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것은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이 순리와 이치로 살았기 때문이다. 짧은 시기마다 강산을 뒤엎는 우리와 다른 것이다.


순리와 이치는 브랑쿠시 예술의 원형처럼 가장 근원적이고 원초적이다. 그래서 그것을 지키고 추구하는 것이 아닐까?

이순구  webmaster@sj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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