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에서 아버지로, 모권의 소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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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에서 아버지로, 모권의 소멸
  • 박한표
  • 승인 2017.03.03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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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표의 그리스

사회가 모계에서 부계로 바뀌게 되면서 신화의 성격도 모권에서 부권으로 바뀌게 된다. 신들의 왕인 제우스를 중심으로 아들과 딸인 아폴론과 아테나가 부권 신화를 지탱하는 쌍두마차의 역할을 한다. 

 

아폴론이 부권신화의 수호신이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두 가지 일화가 있다. 모권의 상징인 거대한 뱀 피톤을 살해한 일과 모친 살해범인 오레스테스를 부권 수호차원에서 끝까지 옹호했던 일이다.

 

첫 번째 일화부터 살펴보자. 죄악에 빠진 인류를 멸망시키기 위해 제우스가 일으킨 대홍수가 끝난 뒤 늪지대에서 사람들을 괴롭히던 거대한 뱀 피톤을 아폴론이 활로 쏴 죽인다. 거대한 뱀 피톤은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수족으로 그의 죽음은 모권 신화의 소멸을 시사한다.

 

 

인류학에서 최초의 인류사회는 혈통관계가 어머니를 중심으로 형성됐다. 모계 사회에서 어머니는 생명의 근원으로 추앙됐다. 오늘날과 같은 생물학적 지식이 없던 고대인들에게 어머니가 자식을 낳는 행위는 땅에서 곡식이 열리고 나무에서 과일이 달리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출생을 남녀 간의 성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자연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믿었던 것이다.

 

성에 대한 지식을 어렴풋이 깨달은 후에도 상당 기간 동안 무리를 지어 생활했던 탓에 누가 누구의 씨앗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대지 역시 만물이 소생하는 근원으로 어머니처럼 숭상 받았다. 이러한 대지를 온몸으로 누비며 정기를 받아들이는 뱀은 모계 사회를 상징하는 영물로 숭배되었다.

 

그러나 사회가 모계에서 부계로 바뀌게 되면서, 모권신화의 숭배물인 뱀은 숙청당한다. 아폴론에게 처단되는 뱀 피톤의 운명은 모권의 쇠퇴와 부권의 등장을 말해준다.

 

거대한 뱀 피톤에게는 아내 피티아가 있었다. 제우스는 자신의 남편을 잃고 눈물로 세월을 보내는 피티아를 불쌍히 여겨 인간으로 몸 바꾸기를 해 준 뒤, 델포이에 있는 아폴론의 신전을 지키게 했다. 아폴론이 예언의 신 노릇을 하는 것은 이 피티아 덕분이다. 아폴론은 피티아라는 여사제를 통해 제우스의 뜻인 신탁을 인간들에게 내려준다.

 

그리고 아폴론이 피톤을 살해한 것을 기념하여 기원전 582년부터 4년마다 델포이에서 피티아 제전이 개최된다. 피톤을 살해한 아폴론은 가이아에게 죄를 닦는다는 뜻으로 한 계곡에서 몸을 깨끗이 씻은 것으로 알려지는데, 이러한 정죄 의식을 기념하여 피티아 축제가 열리게 됐다. 이 제전은 그리스에서 올림픽 다음으로 규모가 크다. 음악의 신 아폴론을 위한 축제인 만큼 음악과 시, 무용 공연이 주로 이루어졌다.

    

 

두 번째 일화는 아폴론이 모친 살해범 오레스테스를 끝까지 옹호했던 일이다. 트로이 전쟁의 그리스 총사령관 아가멤논을 살해한 그의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자신의 아들 오레스테스에게 결국 살해된다.

 

이 모친 살해 사건에서 아폴론은 오레스테스에게 모친 살해를 강력 권고하는가 하면, 복수의 여신 에리니에스의 가혹한 추격을 끝까지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오레스테스는 자신에게 어머니를 죽이라고 신탁을 내린 아폴론 신전으로 피신하여 도움을 청한다.

 

아폴론은 복수의 여신들을 제지하며 오레스테스를 보호했다. 그리고는 당시 재판소로 이용되던 ‘아레이오스 파고스(Areios Pagos)’ 언덕에서 아테네 시민들의 재판을 주선한다.

    

12명의 아테네 시민들이 배심원이 되고, 아폴론이 변호사, 복수의 여신들로 이루어진 코로스의 장이 검사, 아테네 여신이 재판장이 되어 어머니를 살해한 오레스테스에 대한 재판이 벌어졌다. 결과는 오레스테스가 유죄라는 쪽이 여섯, 무죄라는 쪽이 여섯이었다. 이렇게 해서 오레스테스는 무죄로 판결이 난다.

 

투표가 시작되고, 가부 동수가 되었을 때 재판장이 판결하기로 결정했던 터다. 그런데 아테나 여신은 투표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벌써 자신은 오레스테스를 위해 표를 던지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여기서 아폴론은 오레스테스를 처벌하라고 공격하는 에리니에스에 맞서 그의 무죄를 주장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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