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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철하지만 따뜻하지 못한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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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철하지만 따뜻하지 못한 신
  • 박한표
  • 승인 2017.02.24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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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표의 그리스

아폴론은 예술의 여신들인 무사이(Mousai) 아홉 신을 관장하는 음악의 신이다.


그는 헤르메스가 선물한 악기인 리라를 연주하면서 인간의 영혼을 정화시킨다. 아폴론의 리라는 현악기의 일종으로 질서정연한 리듬과 짜임새 있는 멜로디 그리고 균형 잡힌 하모니를 창조한다. 그의 음악은 카오스(chaos, 무질서)가 아니라 코스모스(cosmos, 질서)의 세계이며, 디오니소스의 광적인 음악, 탬버린과 대비된다.


아폴론과 무사이 여신 중 한 명인 칼리오페 사이에서 노래의 달인, 오르페우스가 태어난다. 음악의 신들을 부모로 둔 그는 인간은 물론이거니와 산천초목, 심지어 저승세계까지도 감동시키는 노래의 매력을 발휘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신혼 초에 아내 에우리디케가 독사에 물려 죽임을 당하자 노래의 힘으로 저승세계를 감동시키고 아내를 되찾아 올 수 있었다.


그러나 뒤를 돌아다보지 말라는 약속을 어겨 아내를 두고 혼자서 저승 세계를 빠져나오는 비극의 인물이다.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 눈물겹다. 이 사랑이야기는 다른 곳에서 자세히 살펴보자.


아폴론은 의술의 신이기도 하다.


그리스인들은 어두운 세계를 밝혀주는 이성의 힘과 알 수 없는 미래를 읽는 예언 능력이 수수께끼 같은 몸의 원리를 밝혀주고 치유하는 의술의 능력과 통한다고 믿었다. 아폴론은 죽은 자도 되살리는 신통한 의술을 발휘한 아스클레피오스의 아버지다. 그리스인들은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히포크라테스(Hippokrates)가 아스클레피오스의 후손이라고 믿고 있다.


아스클레피오스는 아폴론의 아들이다. 아폴론은 플레기아스 왕의 딸 코로니스와 사랑에 빠진 적이 있다. 그런데 신의 사랑을 받고 있는 코로니스가 인간과 정을 통하자 이 사실을 아폴론의 새인 까마귀가 고자질했다.


격분한 아폴론이 쌍둥이 남매 아르테미스를 시켜 코로니스를 활로 쏴 죽였다. 아폴론은 죽어가는 코로니스의 몸에서 아기를 끄집어냈다. 그가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다. 그리고 불행한 소식을 전해준 흰 까마귀의 색깔을 바꿔버린다. 원래 하얀색이었던 까마귀가 이때부터 까맣게 되었다고 한다.


아폴론과 처녀 코로니스 사이에서 태어난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가 헤르메스의 도움으로 태어났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아폴론은 애인 코로니스가 아기를 가졌다는 소식을 듣고는 다른 사내의 아이로 착각하고 멀리서 활을 쏴 코로니스를 죽였다.


아폴론이 뒤늦게 자기 아들인 것을 알고 달려갔을 때는 이미 코로니스의 육신이 화장터에서 까맣게 그을린 뒤였다. 아폴론은 헤르메스로 하여금 코로니스의 뱃속에 든 아기를 살려내게 하고는 이 아기를 현명한 켄타우로스 케이론에게 맡겨 의술을 가르치게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아스클레피오스는 켄타우로스 족의 현자 케이론에게 의술을 배웠다. 그는 죽은 자를 살려낼 정도로 의술이 뛰어났다. 그러자 자신이 다스리는 백성들이 자꾸 줄어드는 것을 불안하게 생각한 하데스가 제우스에게 탄원하여 아스클레피오스를 벼락에 맞아 죽게 했다.


의술은 죽음과 삶 사이에 위치한다. 아스클레피오스는 용한 의술로 죽은 사람까지 살렸지만 정작 자신은 제우스의 벼락을 맞고 죽었다. 아스클레피오스는 인간의 몸에서 태어나 신이 되었고, 불사의 신인데도 죽어야 했던 모순된 존재였다.


아스클레피오스가 지니고 있던 뱀이 감긴 지팡이는 의사협회의 로고로 쓰일 정도로 오늘날까지 의학의 상징이 되고 있다. 온 몸으로 대지의 정기를 받아들이며 지하(죽음)와 지상(삶)을 누비고 다니는 뱀의 치유력을 나타낸 것 같다.


아폴론은 활의 명수다. 마치 이성의 날카로움으로 사물의 이치를 정확히 꿰뚫듯 화살을 목표에 적중시키기 위해서는 흥분과 동요는 금물이고, 평정과 냉정이 필수다. 이성의 신 아폴론이 궁술의 신이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아폴론의 활은 그의 장점과 단점을 모두 설명해주는 상징이기도 하다. 아폴론의 활은 원거리의 목표를 겨냥할 때 더 정확하다. 그래서 아폴론은 대상을 가까이 두지 않고 항상 멀리 둔다. 대상과 거리를 둔다는 것은 주관성을 철저히 배제하고 객관성을 높인다는 의미다. 감정에 쉽사리 휩쓸리지 않는 이성의 신으로서의 면모를 잘 보여주는 셈이다.


그러나 이 같은 태도에는 숲은 보되 나무는 보지 못하는 단점이 따른다. 정리하면, 아폴론은 냉철하고 객관적인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능력은 탁월하지만, 사물을 애정 어린 마음으로 살피는 따스한 힘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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