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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 스토리를 입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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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 스토리를 입히자
  • 이환태
  • 승인 2017.03.08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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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환태의 인문학여행] <1>도시와 이야기

아주 오래 전에 미국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네브라스카의 레드 클라우드란 곳에 들른 적이 있다. 달리 볼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볼 만한 것도 없는 조그만 읍이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인 ‘오, 개척자여’로 유명한 윌라 캐서의 기념관이 있는 곳이어서 지나는 길에 그냥 들렀을 뿐이다.


그 기념관은 작가가 어린 시절 살던 집과 가재도구 같은 것을 전시해 놓고 있었다. 그곳을 둘러 본 후 그 작가의 작품 배경이 되었던 곳을 물어물어 찾아간 적이 있다. 그런데 그곳은 막 밀을 수확한 끝도 없이 넓은 황량한 들판만 있을 뿐, 작품과 연관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십 수 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가끔 그곳 들판을 그리워한다. 그 때 나는 빈 들판을 본 게 아니라 내가 읽고 감동했던 작품의 배경을 보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다시 읽은 소설가 김유정의 춘천과 채만식의 군산도, 이효석의 봉평이나 이문구의 대천도 마찬가지다. 가 보아도 이미 변해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을 것이 빤하지만 그래도 심심하면 한 번씩 가보고 싶어진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마을은 실제의 마을이 아닌,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된 마을이지만 진솔한 삶의 이야기가 어려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영국을 두어 번 가보았지만 작가의 고향이라고는 셰익스피어의 고향 한 곳만을 보고 온 것이 마냥 서운하다.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의 배경이나 토마스 하디의 웨섹스 지방을 한번 꼭 가보고 싶다. 워즈워스의 시에 나오는 추수하며 혼자 노래하던 그 하이랜드의 아가씨가 살던 곳도 한 번 가보고 싶다.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골목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왜 이런 델 가보고 싶어 하는가? 얼마 전 한류바람을 타고 일본의 아줌마들이 춘천의 남이섬 같은 곳으로 오던 것과 같은 이유에서다. 비록 허구지만 감동적인 그 이야기를 현실과 연관 짓고 그것이 순전히 가짜만은 아니라고 믿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땅은 본래 아무 의미가 없는 덩어리에 불과하다. 그러나 거기다가 이름을 붙이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옷 입히면 비로소 색다른 의미를 지니게 된다.

 

그냥 평범한 야구공도 유명한 선수가 홈런을 친 것은 의미가 달라지듯이 말이다. 그 의미의 세계는 불에 태워도 타지 않고 물에 녹여도 녹지 않으니 거의 영원하다 할 만하다. 세종시가 바로 이런 이야기들로 옷 입혀진다면 이 도시의 이미지는 사뭇 달라질 것이다.


사실이든 허구든, 세종시의 구석진 골목에까지 이야기의 옷을 입힌다면 어떨까? 허허벌판을 깡그리 밀어내고 철근과 콘크리트로 뒤덮어버려서 삭막하고 을씨년스러울 수 있는 이 도시야말로 그런 이야기가 절실히 필요하지 않을까? 반듯하고 각지고 뾰족한 것들로 가득한 도시를 수많은 이야기로 옷 입혀 정감어린 삶의 터로 만드는 것은 이제 우리 시민들의 몫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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