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무릎 꿇는 자에게만 자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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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무릎 꿇는 자에게만 자비롭다
  • 박한표
  • 승인 2017.01.30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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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표의 그리스

태양의 밝은 빛을 상징하는 아폴론의 이미지는 이성으로 통한다. 아폴론은 어두운 세계를 밝혀주는 빛처럼, 세상의 이치와 본질을 밝혀내는 이성을 대변한다. 이성은 밝고 명확한 것을 존중하는 그리스인들의 최고 덕목이기도 하다.


아폴론은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어떠한 감정의 흔들림도 허용치 않는 차가운 이성의 신이다. 그는 어떠한 경우에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균형 감각을 유지한다. 그에게 있어 감정은 철저히 배척된다. 정확하고 객관적인 판단을 하는데 방해가 된다는 이유에서다.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에 가면 이런 경구들이 적혀 있다. “지나쳐서는 안 된다.” “너의 영혼을 다스려라.” “절제가 으뜸가는 덕이다.” “너 자신을 알라.”


그런데 ‘그리스의 지성’ ‘이상적인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칭송받는 아폴론에게도 무섭고 음울한 면이 잠재해 있다. 아폴론은 다면적인 성격을 지닌 신이다. 그는 치유의 신이면서 동시에 전염병이나 유행병을 일으키게 하는 사악한 힘도 갖고 있다. 평상시에는 시를 읊고 악기를 연주하지만, 자신을 적으로 대하는 자에게는 가차 없이 혹독하게 보복을 가했다.


아폴론은 마르시아스에게 아주 잔혹한 형별을 내린 적이 있다. 마르시아스는 산양의 발굽과 뿔을 가진 숲의 정령, 즉 사티로스다. 마르시아스는 자신의 피리 솜씨가 아폴론의 수금 연주 실력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급기야 그는 오만하게도 음악의 신 아폴론에게 연주 실력을 겨루자고 제안했다. 드디어 연주 시합이 열렸다. 둘은 한 번씩 악기를 연주했지만 승부가 나지 않았다.


그러자 아폴론이 악기를 거꾸로 들고 겨뤄보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피리는 거꾸로 든 채 연주하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어찌할 수 없었다. 약속한 대로 승부에 패한 마르시아스는 나무에 매달려 산 채로 가죽이 벗겨지는 끔찍한 보복을 당하고 말았다. 이처럼 아폴론은 잔혹한 성향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감정이 없는 이성의 신이어서일까? 그는 지나치게 차갑고, 보복을 할 때는 지나치게 혹독했다.

 

 


신들은 겨룸의 대상이 아니다. 신들과 겨루다가 혹독하게 보복당한 인간이 또 있다. 베 짜기 여신인 아테나와 감히 시합을 벌인 아라크네다. 아라크네는 여신에게 북으로 한 대 얻어맞고 거미가 됐다. 마르시아스와 아라크네에게서 기억해야 할 점이 있다. 신들은 인간이 무릎을 꿇을 때만 자비롭다는 것이다. 감히 인간이 신들과 겨루려한다면, 신들은 인간에게 벌을 내린다. 신과 한판의 대거리를 해보겠다는 오기를 가진 사람은 산채로 살가죽이 벗겨질 각오를 해야 한다. 좀 잘 나간다고 으스대지 말라는 의미다.


우리가 많이 들어본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이야기도 여기서 유래한다. 미다스라는 왕이아폴론과 마르시아스의 연주시합 때 심판관으로 초빙됐다. 다른 심판관들은 모두 아폴론의 손을 들어줬는데, 미다스 혼자만 마르시아스의 승리를 선언하며 아폴론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아폴론은 “그 따위 귀도 귀라고 달고 다니느냐”면서 양 손으로 두 귀를 잡아당겼다. 미다스의 귀가 당나귀 귀가 된 이유다.


미다스는 모자와 수건으로 부끄러운 귀를 늘 가리고 다녔지만 이발사에게만은 비밀을 숨길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이발사에게 비밀을 지켜달라고 부탁했다. 어길 경우 엄벌에 처한다는 협박까지 했다. 이발사는 한동안 입을 잘 닫고 살았으나 시간이 갈수록 비밀을 말하고 싶어 몸살이 났다.


참다못한 그는 어느 날 깊은 산으로 들어가 구덩이를 팠다. 그리고는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내뱉고 흙으로 덮어버렸다. 세월이 흘러 이발사가 흙으로 덮은 지역에 갈대가 무성하게 자라났다. 그리고 바람이 불어 갈대숲이 흔들릴 때마다 이발사가 묻고 간 말이 쏟아져 나왔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세상에 비밀은 없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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