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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고시, 이대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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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고시, 이대로는 안 된다
  • 김학용
  • 승인 2017.01.29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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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논단] 폐지든 축소든 개선책 찾아야
주필 | 칼럼니스트

9급이나 7급 공무원으로 공직에 입문하는 ‘보통 공무원’이 퇴직 때까지 가장 높이 오를 수 있는 자리는 시도의 경우 국장급인 부이사관(3급)이다. 능력에 따라 그 이상 올라갈 수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하늘의 별따기다. 현실적으로 부이사관 자리에만 오르면 출세했다고 할 수 있다.

기회도 사라져가는 ‘보통 공무원들’

3급으로 퇴직한 한 분은 자신과 함께 정년을 한 동료 23명 가운데 3급은 자신뿐이라고 했다. 부이사관은 아무나 오를 수 있는 자리는 분명 아니다. 그러나 아무도 오르지 못하는 자리가 되어선 곤란하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지방공무원들에게 부이사관은 평생을 열심히 일해도 오를 수 없는 자리가 되어 가고 있다. 3급은 고사하고 4급(과장급)에 오르기도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행정고시 제도가 불러오는 결과다. 보통 규모의 광역자치단체에는 국장급 이상의 자리가 15개 정도 있다. 국장급 자리가 10개 안팎이던 과거에는 행시 출신이 2~3개로 오히려 적었으나 비율이 역전되면서 이젠 고시 출신들로만 채워지고 있다. 앞으로도 고시 점유율이 계속 늘어나게 돼 있다.

중앙정부가 고시 출신들을 계속 지방으로 내려 보내고, 이들 가운데 일부가 지방에 눌러 앉으면서 빚어지는 현상이다. 지방에도 고급 인력이 늘어난다는 점에서 환영할 일로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30~40대에 국장급에 승진한 고시 출신은 중앙정부 등 다른 기관으로 옮기지 않으면 같은 자리에서 장기간 머물면서 심각한 인사 정체가 발생한다.

고시출신은 ‘직업이 부이사관’

과거 ‘유신 사무관’으로 시도에 내려온 사람 중에는 국장만 20년 넘게 한 경우도 있었다. 그들에겐 ‘직업이 국장’이란 별명이 붙었었다. 지금은 각 시도에 ‘직업이 부이사관’이란 얘기를 듣는 사람들이 점차 늘고 있다고 한다. 고시 출신들이 시도마다 국장급 이상 고위직 자리를 가득 메우고, 그들끼리 거기서 돌고 도는 인사만 계속된다면 그 조직은 어떻게 될까? 살아있는 조직이 되기는 어렵다.

시도의 고시 출신 대부분은 장기간 더 이상 갈 곳이 없고 승진할 자리가 없어서 불만이고, 보통 공무원들은 고시파가 불만스러워하는 그 자리에 올라갈 기회조차 얻지 못해 큰 불만이다. 공무원들에게 가장 큰 동기 부여는 승진이다. 나도 올라갈 수 있는 자리를 특정한 사람들이 다 차지하고 있다면 일할 맛이 나지 않을 것이다. 지방자치단체는 그런 조직으로 변해가고 있고 그 정도가 점차 심해지고 있다.

지방도 복잡하고 다양한 행정 수요를 처리할 능력을 갖춰야 되는 만큼 고급 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제는 행시 출신만 고급 인력은 아니다. 행시 출신보다 시험 문제 하나 더 틀리면 7급, 두 개 더 틀리면 9급 공무원이란 얘기도 있다. 우스갯소리지만 사법고시 합격자가 7급 공무원 시험에 떨어졌다는 뉴스까지 나오는 걸 보면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니다. 소위 SKY대 출신들이 9급 공무원으로 들어가는 것도 예삿일이 되었다.

행정고시 없애거나 크게 줄여야

학력과 시험 성적만을 가지고 인재를 구분하는 것도 문제다. 예나 지금이나 시험점수 좋은 사람이 꼭 우수한 건 아니다. <성호사설>은 성호(星湖) 선생이 마치 지금의 일부 고시 출신들에게 하는 말처럼 들린다. “사람이 거만하고 거짓되며 탐욕스럽고 가볍더라도 과거(科擧) 공부에 능숙한 자가 있다. 그러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글 주머니와 지혜 주머니는 다르다’ 했으니 문장에 능숙한 자가 지능도 있을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7급, 9급 출신 중에도 고시파 못지않은 실력을 갖춘 공무원들을 적지 않게 봤다. 이들도 시험에만 능하고 지혜는 모자라면서도 고위직을 차지하고 있는 - 고시 출신들과 경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9급도 살고, 조직도 살아난다. 무기력증에 빠져 있는 고시 출신에게도 자극이 되고 도움이 되는 방법이다.

행시 제도가 이를 가로막고 있다. 고시를 없애거나 모집 인원을 크게 줄여야 한다. 대구시 공무원사회에서는 한때 행시 출신에 대해 계급 정년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모두 쉽지 않은 일이다. 행시 문제에 대해 펜대를 잡고 있는 사람들은 전부 고시 출신이다. 경찰대 출신들은 경찰대를 지키려 하고, 고시 출신들은 고시 폐지를 반대한다. 정치권에서 나서지 않으면 어렵다. 최근 민주당 더미래연구소가 행시 폐지안을 발표하자, 행시 준비생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행정고시가 ‘계급의 사다리’라며 폐지에 반대하기도 한다.

행시는 국가의 인재를 가장 공정하고 객관적인 방법으로 충원할 수 있는 제도다. 행시 출신 인재들이 그런 역할을 해온 것도 사실이다. 또 행시 출신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인사 교류와 소통의 좋은 수단도 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장점도 살리지 못하고 있다. 이것부터 실천에 옮겨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젠 행정고시의 부작용만 커지고 있다. 지방이 특히 그렇다.

지방은 중앙에 비해 현장 행정 부분이 많다. 기획 업무는 고시 출신이 뛰어나지만 현장 행정은 9급, 7급 출신이 오히려 유리하다. 이런 분야 간부직까지 고시 출신이 장악해 가면서도 그들은 그들대로 겉돌고, 아래 직급은 유능한 사람들조차 ‘출신 성분’의 한계 때문에 사기가 떨어지고 있다. 공직을 그만둔 한 분은 “고시 출신은 공무원 사회에선 금수저”라고 했다.

취업준비생들에겐 ‘흙수저 9급’도 간절하기 그지없다. 공무원 시험은 보통 100대 1 안팎이다. 그러나 일단 공무원이 되면 행정고시라는 제도가 쳐놓고 있는 ‘신분 장벽’에 막혀 미래가 없는 세월을 보내기 십상이다. 그냥 두면 국민과 시민들의 피해로 돌아오게 돼 있다. 행정고시 제도는 폐지든 축소든 빨리 개선책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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