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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디 쓴 대한민국의 자화상, ‘나도 블랙리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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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디 쓴 대한민국의 자화상, ‘나도 블랙리스트다’
  • 한지혜 기자
  • 승인 2017.01.11 13:0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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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소설집 '노크' 출판한 최광 작가

문화계 블랙리스트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대한민국이 충격에 휩싸였다. 이 와중에 ‘나도 블랙리스트다’라고 외치는 최광(64) 세종문학회장이 대한민국의 자화상을 다룬 첫 번째 소설집 ‘노크’를 출간했다.

최 작가는 지난 수 십 년 간 책방을 운영하며 20대 시절부터 글을 써왔다. 특히 우리 시대가 내포한 사회문제와 모순을 중점적으로 다뤄온 그는 이번 논란을 ‘블랙코미디’라고 단정했다. 

지난 9일 조치원읍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수 년 간 쓰고 지우기를 반복한 9편의 작품. 한 권의 소설집에 담기엔 그 무게는 꽤나 무거워보였다. 

징병제·구제역·자살… 문제의식으로 ‘노크’하는 작가

최광 작가는 1999년 ‘문학21’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이후 첫 소설집에는 써놓은 30여 편의 글 중 최근 작품을 선별, 총 9편이 담겼다. 물론 작품 모두 날카로운 세종문학회 합평을 거쳤다.

최 작가는 “학교에 교과서를 납품하는 책방을 운영하다보니 이 시기가 가장 바쁘다”며 “낮이고 밤이고 가리지 않고 써온 작품들 중 흔히 문학으로 얘기되지 않는 사회문화적인 이슈를 담은 작품을 골랐다”고 했다.

소설집의 제목이기도 한 ‘노크’는 지난 2014년 강원도 고성 GOP에서 발생한 임 병장 사건과 2012년 북한 병사의 ‘노크 귀순’ 사건에서 소재를 따왔다.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에서 일어난 군대 부적응자의 총기 난사 사건. 그는 근본적인 원인을 군대가 가진 억압성에서 찾았다.

최 작가는 “모병제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 인성검사 과정에서 60%가 탈락한다”며 “군대라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많은 젊은이들과 매년 100명 정도씩 죽어나가는 한국 군대의 현실은 사실 남북관계라는 특수성 때문에 쉽게 얘기조차 할 수 없다. 인간의 개성과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작품들은 모두 실제 일어나는 사회적 현상이나 모순을 담고 있다. “소설이 사회적 문제에 매번 답해야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곳에서 부대끼고 살아가는 우리네 삶을 그려보고 싶었다”는 것이 그의 전언. 두 번째 작품 ‘감염’ 역시 매년 축산 농가를 휩쓸고 있는 구제역을 소재로 삼았다.

그는 “사실 구제역은 인간들이 고기를 싸게, 많이 먹기 위해 공장축사를 하면서 벌어진 일”이라며 “구제역 살처분 과정에서 농가는 물론 방역공무원, 포크레인 기사들까지 자살하거나 트라우마를 겪곤 한다. 인간의 욕망으로 발생한 생물학적 감염이 결국 인간의 정신위생적 감염에 이르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소설집에는 구도심 슬럼화로 인해 파산에 이른 자영업자나 자본주의 아래에서 고통 받는 소시민, 아파트 재개발 등을 소재로 한 작품이 담겼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40년 묵은 ‘블랙코미디’

최광 작가는 수 십 년 간 책방을 운영해 온 서점 주인이기도 하다. 오늘날 문화계 블랙리스트의 존재는 40년 전 경찰서를 통해 책방으로 내려오던 ‘금서리스트’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게 그의 인식.

그는 “당시 금요일날 경찰서를 통해 책방에 금서리스트가 내려오면 다음날 토요일 신문에 금서 판정 기사가 실렸다”며 “희한하게도 금서로 판정되는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는 진기한 현상이 이어졌다. 책방 주인인 나 역시 많이 팔리니 오히려 재빠르게 책 주문을 더 넣곤 했다”고 회고했다.

이번 문화계 블랙리스트에는 총 9473명의 문화예술인들이 포함됐다. 최광 작가 역시 리스트에 이름이 올랐다.

그는 “이번 문화계 블랙리스트 파문은 40년 전 사고를 가진 이들이 현재 국정 최고 위치에 있으니 나타나게 된 일”이라며 “최근 쓴 ‘박근혜 게이트’라는 시에서처럼 업그레이드 되지 않은 채 케케묵은 네비게이션을 달고 주행하다 추락하는 모양새”라고 했다. 

그러면서 “누구나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에 서명하고, 특정 후보의 문화 정책을 지지할 수 있는 것”이라며 “SNS를 통해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빠져 서운하다는 작가도 있고, 검색하면서 자기 이름이 안나올까봐 조마조마했다는 작가도 있었다. 나도 블랙리스트에 이름 좀 넣어주면 안되겠냐는 우스갯소리도 나오는데, 블랙코미디와 다를 바 없다”고 했다. 

청소년문학캠프, 지역 문인과 학생들 문학의 장  


세종문학회가 주관하는 ‘청소년 문학캠프’는 2009년부터 매년 꾸준히 열리고 있다. 지역 문인들이 직접 학생들을 대상으로 창작 강의에 나서는 등 한 작품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함께 한다.  

최광 작가는 “학교 문학교육은 문학이라는 교과서 안에서 이뤄지는 것이 대부분”이라며 “특히 지방에서는 젊은 문학인들을 만나기 어렵다. 문학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지역 문인들이 직접 지도 강사로 나서 하루 동안 작품을 완성하는 보람이 크다”고 했다. 

최 작가는 과거 중학교 시절, 지금으로 따지면 ‘대안학교’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당시 매우 자유롭고 혁신적이던 학교 분위기는 지금 생각하면 최고의 교육체계였다.

그는 “당시 의식 있는 교육운동가 분들이 적은 월급을 받고 교사로 참여한 학교였다”며 “지금의 정체성과 가치관 모두 그 시기 만들어졌고, 방과 후 그룹 활동을 통해 교과서 넘어 다양한 공부를 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회상했다. 

그때의 기억 때문인지 그는 평소 ‘교육’에도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 세종에서도 2012년 세종교육희망네트워크를 발족, 학교교육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최 작가는 “우리나라 초등학교만 해도 교과서가 무려 15권에 달한다”며 “선진국의 경우 교과서 수도 적을뿐더러 아예 텍스트가 없는 과목도 있다. 인간의 두뇌는 그릇과 같아서 들어갈 수 있는 양은 한계가 있고, 꽉 차면 새로운 생각을 할 공간도 사라지는 것”이라고 했다. 

문학도 ‘지방자치’ 화두, 중앙 문인들과 상생해야  

글쓰기는 매우 주관적인 작업이지만, 결과적으로는 객관적이어야 한다. 대중에게 공감을 얻기 위해 소통의 과정이 필요한 이유다. 

그는 “현재 세종문학 동인들끼리 정기 합평을 해오고 있지만, 문학캠프 등 문학회 프로그램을 진행할 공간이나 지원이 부족한 실정”이라며 “지역문학 발전을 위해서는 문인들이 작품을 알리고, 학생 교육 등 각종 프로그램을 펼칠 공간이 급선무”라고 했다.

지역 문학을 어떻게 발전시키느냐가 중요한 화두로 자리잡았다. 지역문인들은 작품을 통해 도시 기록물을 창조하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 무엇보다 세종시 출범 이후 이주한 유명 문인들과의 상생이 지역 문학을 발전시키는 방안이 되고 있다.

최 작가는 “세종시 출범 후 중앙에 있던 문학인들이 몇 분 내려왔다”며 “과거 연기군 시절의 틀로는 어렵다. 중앙 작가들이 동참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돼야 하고, 지방자치가 강화되는 흐름과 같이 문학 역시 지방문학이 힘을 얻고, 스스로 발전해 나가야한다”고 했다. 

그는 이번 첫 소설집을 시작으로 오랜 시간 내공이 담긴 작품들을 발표할 계획이다. 올해는 시집을 한 권 내고, 내년에는 현재 집필 중인 장편소설을 출간할 예정.

최 작가는 “과거에는 시 한 편, 소설 한 작품이 세상을 바꿀 정도로 큰 힘이 있었던 때가 있었다”며 “시대가 바뀌긴 했지만, 마음속에 간직될 좋은 작품 하나가 여전히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문학은 죽었다'는 말로 글의 위기를 말한다. 하지만 불 꺼진 쿰쿰한 책방, 오랜 시간 먼지를 들이마시며 쓴 대한민국의 자화상은 여전히 책 속에 살아 숨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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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jsw1018 2017-02-04 14:08:14
잘 쓰셨네요. 문학은 절마과 희망의 이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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