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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시대의 융합과 통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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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시대의 융합과 통섭
  • 정은영
  • 승인 2017.01.05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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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영의 미술사 산책] 베르니니의 용기

바로크 시대로 불리는 17세기는 웅장한 건축물이나 화려한 천정화 못지않게 생생하고 역동적인 조각과 사실적인 회화가 풍미한 시대였다. 가톨릭교회와 절대왕정의 후원을 받아 제작된 이 시대의 예술은 건축, 회화, 조각, 실내장식 등이 하나의 총체적인 연극무대처럼 통합되어 있어, 바로크 미술을 감상하는 이들은 지금도 여전히 그 완벽한 환영(幻影)의 세계에 빠져드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상상과 현실의 경계나 예술의 장르별 구분을 무너트린 바로크 미술은 19세기 말에 ‘총체 예술(Gesamtkunstwerk)’이라는 이름으로 유행한 통합적인 예술을 이미 200년 전에 선취했다고 할 수 있겠다. 경계나 구분을 허물어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자는 뜻에서 최근 들어 인구에 회자되는 ‘융합’이니 ‘통섭’이니 하는 개념 역시 수백 년 전 바로크 미술이 이룩했던 ‘총체적 융합’을 21세기의 시각에서 재시도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탈리아의 지안로렌초 베르니니(Gianlorenzo Bernini)는 단연코 그 ‘융합’의 정점에 서 있는 인물이다. 건축가이자 조각가였던 그는 흔히 르네상스의 거장 미켈란젤로의 뒤를 잇는 예술가로 평가되지만, 다양한 장르가 융합된 환상적인 공간의 창조에 있어서는 가히 미켈란젤로를 능가한다 해도 지나치지 않은 존재다.

 


특히 로마의 산타 마리아 델라 비토리아 교회의 코르나로 예배당에 설치된 <성녀 테레사의 희열(Ecstasy of Saint Theresa)>은 베르니니의 예술을 대표하는 ‘융합의 걸작’이다. 17세기 초에 성녀로 시성된 테레사(Teresa of Avila, 1515~1582)의 영적 체험을 조각으로 구현한 이 작품은, 널리 알려진 대로, 천사가 자신의 가슴에 황금빛의 화살을 꽂는 꿈을 꾸었다는 테레사의 기록을 바탕으로 하여 신(神)을 맞이하는 성녀의 영적인 탄생을 시각화한 것이다.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천사는 테레사의 옷자락을 살짝 들어 올리며 황금 화살을 재차 내리 꽂으려 하고 있다. 의식을 잃은 듯 반쯤 눈을 감은 테레사는 뭉게구름을 타고 하늘로 날아오르며 종교적인 황홀감에 젖어 있다. 힘없이 쳐진 맨발과 무(無)저항의 가녀린 손, 굽이굽이 접혔다 펼쳐지는 격정적인 옷자락만이 그녀의 내적 체험이 얼마나 격렬한지를 짐작케 한다. 관능적인 황홀경과 정신적인 희열을 넘나드는 감각적인 표현에서 조각가 베르니니의 기량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그러나 <성녀 테레사의 희열>이 서양조각사에서 가장 위대한 작품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이유는 이 개별 조각의 완성도뿐만 아니라 코르나로 예배당의 전체적인 앙상블이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융합의 무대’에 있다.

 


베르니니는 성녀 테레사에게 비치는 천상의 빛을 제단 위에서 쏟아지는 금빛의 광선 조각으로 표현하는가 하면, 중앙 조각상 양쪽에 발코니를 설치하여 거기에 앉은 관객이 성녀의 종교적인 희열을 지켜보게 하는 연극적인 무대를 연출하였다. 마치 오페라의 한 장면을 지켜보듯이 극장의 박스석(box seats)에 앉아 사건을 목도하는 이들은 바로 이 예배당 건축을 후원한 코르나로 가문의 일원들이다.


실제 공간으로 튀어나오도록 고(高)부조로 조각된 인물들은 예배당의 제단 앞에 선 우리와 동일한 관객들이자 종교적인 사건의 증인들이다. 그야말로 건축과 조각, 현실과 환상, 지상과 천상, 무대와 제단이 경계 없이 하나로 어우러진 ‘총체 예술’이 아닐 수 없다.

  
베르니니가 전통적인 제단 조각의 형식과 엄숙한 장르의 규범을 고수했다면 이런 독창적인 예술 공간을 창조할 수 있었을까. 고정된 경계를 넘고 주어진 영역을 건너 불가능해보이던 세계를 실현해보겠다는 용기. 베르니니의 위대함은 바로 이 용기의 소산이 아니었나 싶다. ‘융합’과 ‘통섭’을 꿈꾸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용기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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