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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뜯어먹는 인간에 대한 경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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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뜯어먹는 인간에 대한 경종
  • 박한표
  • 승인 2016.11.25 17: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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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표의 그리스·로마신화 읽기] <7>‘환경지킴이’ 데메테르

참나무 찍은 에리직톤에 ‘아귀병’ 엄벌
태양 마차 궤도 이탈, 파에톤도 추락사


슈퍼맘, 헬리콥터맘, 신모계 사회 등의 신조어가 유행하면서 ‘초인적 모성’에 대한 현대인의 기대치는 오히려 높아졌다. ‘사회가 날 보호해 줄 것이다’라는 환상이 깨지면서 ‘이제 날 보호할 사람은 엄마뿐’이라는 집단적 공포가 확산되는 듯하다. 앞서 살펴보았듯 신화 속에서 이러한 슈퍼맘이 데메테르다.


데메테르가 보여주는 지독한 모성애는 부모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식에게 지나치게 얽매이는 어머니의 전형을 보여주는 측면이 있다. 데메테르는 딸의 운명에 집착해 자신의 본분을 팽개쳤으며, 심지어 시집간 딸마저도 옆에 끼고 살려는 욕망을 드러냈다. 데메테르의 모성은 사랑이 지나치면 집착과 소유욕으로 변질될 수 있음을 말해준다. 자식은 나를 닮았지만 내가 아닌 존재다. 그러므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모성의 집착보다 엄마와 자식이 서로의 타자성을 인정하는 새로운 모성의 ‘예의’가 필요하다.


모든 사랑은 편애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 사랑하는 대상과 사랑하지 않는 대상을 나누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의는 다르다. 예의는 모르는 사람에게도,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지켜야 할 무엇이다. ‘난 널 알아, 그러니 널 지배하겠다’는 배타적 모성이 아니라, ‘난 널 몰라, 하지만 너의 너다움을 인정한다’는 보편적 예의가 가족 안에서도 필요하다. 그리고 더 나아가, ‘내 자식’을 향한 배타적 애착보다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하는 타인에게도 엄마가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그것이 인간에 대한 예의다.


오늘은 데메테르의 또 다른 면을 살펴보자. 땅의 여신 데메테르가 에리직톤을 걸신들리게 만든 이야기에서다.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에서 강의 신 칼뤼돈이 그의 곁을 지나가던 영웅 테세우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준다.


대지와 곡식의 여신인 데메테르의 신전 뒤에는 여신에게 봉헌된 커다란 참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그리고 그 신전 가까이에는 에리직톤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신들을 우습게 여기는, 즉 신들에게 제사도 드리지 않는 무례한 사람이었다.


어느 날 에리직톤이 도끼로 그 참나무를 쓰러뜨렸다. 그 때 나무는 이렇게 소리를 내며 울부짖었다고 한다. “이 나무속에 사는 나는 데메테르 여신의 사랑을 입은 요정이다. 내가 숨을 거두면서 너에게 경고한다. 너의 사악한 짓에 대한 보답이 곧 있으리라.”


나무마다 그 속에 요정이 있다고 생각한 것은 신화시대 사람들의 보편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요즈음의 우리는 나무도 우리처럼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리스어로 ‘하마드리아데스(Hamadryades)’가 ‘나무 요정’이란 뜻이다. ‘나무(dryas)’와 ‘함께(hama)’라는 두 단어가 조합됐다.

 


요정들의 간청에 데메테르 여신은 에리직톤에게 무시무시한 벌을 내렸다. 그 병은 먹어도, 먹어도 허기를 느끼는, 배고픔이 사라지지 않는 무서운 아귀병이었다. 에리직톤은 온갖 음식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닥치는 대로 먹어댄다. 그러나 아무리 먹어도 허기는 가시지 않는다. 그는 끝없는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집과 논, 밭 등 있는 재산을 모조리 팔아치운다.


재산을 다 날려버리자 하나뿐인 딸까지 팔아먹는다. 포세이돈의 도움으로 팔린 딸을 몇 차례 되찾긴 했지만, 그의 배고픔은 그칠 줄 모른다. 그는 결국 자신의 팔다리를 잘라먹고 몸통까지 뜯어 먹기에 이른다. 결국 먹는 입만 남을 때까지 자신을 뜯어 먹도록 배고픔에 시달리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그의 비극은 끝없는 개발욕심에 사로잡혀 자연과 환경을 마구 훼손하는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경종을 울린다. 좀 더 편하고, 좀 더 많이 소유하고, 좀 더 안락하고자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의 욕망은 에리직톤의 아귀병과 같다. 우리는 지금 자연이라는 팔다리를 잘라 먹고, 환경이라는 몸통을 뜯어 먹고 있다.


데메테르는 실제로 ‘다(Da, 땅)’의 ‘메테르(Meter, 어머니)’라는 뜻이다. 땅의 어머니 데메테르는 자연과 환경을 파괴하는 인간들을 엄벌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우리는 데메테르를 ‘환경 지킴이’, ‘자연의 파수꾼’이라고 부른다.


또 다른 일화도 있다. 태양신 헬리오스의 아들 파에톤(Phaeton)이 아버지를 졸라 하루 동안 태양 마차를 대신 몰게 된다. 그런데 마차에 오르자마자 그는 운전 미숙으로 궤도를 이탈하는 사고를 저지른다.


파에톤의 태양 마차가 고도를 너무 낮추고 달리자 산천초목이 불타고 강물이 말라버린다. 데메테르는 제우스에게 자연 파괴범을 엄벌에 처하라고 탄원한다. 파에톤은 제우스의 벼락을 맞고 태양 마차에서 떨어져 죽는다. 그 유명한 ‘파에톤의 추락’이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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