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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남녀의 '오도이촌', 2.7평 작은 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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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남녀의 '오도이촌', 2.7평 작은 집 이야기
  • 한지혜 기자
  • 승인 2016.11.01 15: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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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신개념 마을공동체 '별꽃마을' 만드는 연제규·한은영 부부

‘오도이촌(五都二村)’. 일주일 중 닷새는 도시, 이틀은 농촌에서 산다는 뜻의 신조어다. 평일에는 치열한 도시에서 생활하다가 주말이면 작은 텃밭이 딸린 농촌에서 여유로움을 만끽하는 삶의 양식을 말한다.

지난 7월 세종시 장군면 용현리에 오도이촌 생활을 상징하는 ‘오이집’이 들어섰다. 9m², 2.7평의 작은 집은 첫마을에 거주중인 연제규(41), 한은영(31) 부부가 한겨레 작은집 건축학교를 통해 8일간 직접 지은 집이다.

서울에서 각각 디자이너와 스마트폰 앱개발자로 일하던 젊은 부부가 인간답지 못한(?) 생활을 벗어나 세종으로 왔다. 그리고선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 토지공동구매를 통해 마을 만들기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이들이 꿈꾸는 삶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주말을 앞둔 지난 28일 용현리 오이집을 방문해 이 부부를 만났다.

도시 남녀, 서울을 떠나다… 작은 집 건축학교와 ‘오이집’


2011년 결혼한 이들은 뼛속까지 도시사람들이다. 서울에서 자라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치열한 20대와 30대를 살았다. 

남편 연제규 씨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결혼 이후에도 함께하는 시간을 갖지 못했다”며 “당시 스마트폰 앱 개발에 몰두하면서 1년 동안 새벽 퇴근이 기본이었고, 자기 전 15분이 잠깐 얼굴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디자인 회사를 다니던 아내의 직장생활도 다를 바 없었다. 밥 먹듯이 하는 야근은 불규칙한 생활패턴을 만들었고 몸을 상하게 했다. 그러던 중 부부는 어느 날, 이 지긋지긋한 서울만 아니면 어딜 가든 상관이 없겠다는 생각으로 지도를 폈다. 그리고는 당시 연기군, 세종시를 콕 찍었다. 

이들은 “세종시 금남면에 처음 터를 잡고 작은 디자인회사를 차렸는데 길도 안 닦인 상태였고, 첫마을 입주도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며 “하지만 세종시는 5분만 나가도 온전한 농촌 풍경을 볼 수 있어서 항상 감탄하곤 했다”고 말했다.

세종에서 오도이촌 생활을 시작하려니 땅도, 집도 없었다. 물론 땅을 살 여력도 되지 않았다. 우연히 한겨레 작은집 건축학교 1기 수강생 모집공고를 보게 된 부부는 올해 1월 충북 제천에서 둘 만의 힘으로 지금의 오이집을 지었다.  

이들은 “설계부터 시작해 자재선정, 시공까지 모두 처음 해본 일이어서 시행착오가 많았다”며 “공정이 뒤죽박죽 돼 한 번 해도 될 일을 두세 번 했던 적도 많았지만, 물리적으로 작은  면적이다보니 공정과정도, 복구도 빨랐다”고 했다.

문제는 집을 놓을 ‘땅’이었다. 부동산에 가니 200평, 500평 되는 땅은 너무 컸을 뿐더러 평당 가격도 높았다. 이들은 고심 끝에 땅을 임대해 줄 사람을 찾아나섰다. 농업기술센터 방문을 시작으로 주변 인맥을 총 동원했지만 실제 집을 놓을만한 땅은 찾을 수 없었고, 오이집은 6개월째 제천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세종시닷컴 카페에 작은집 취지와 함께 글을 올렸고, 한 주민분께서 연락이 왔다”며 “마침 서울에서 귀농한 같은 또래의 한 젊은 농부의 도움으로 용현리에 임시로 집을 놓을 수 있었다”고 했다.

휴식은 집에서, 생활은 밖에서… 체류형 ‘스몰하우스’ 

주거문화가 아파트로 변화하면서 마을공동체 생활은 사라졌다. 밀집된 단독주택 지역은 재개발로 고층 아파트가 들어섰고, 이웃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이들은 “과거 우리 세대는 집들이 밀집된 작은 단독주택촌에서 태어났다”며 “당시 생활 대부분은 집 밖 마을에서 이루어졌다. 함께 아이를 키우고, 같이 밥을 먹고, 겨울을 앞두고는 다같이 김장을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이가 들면서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것들을 함께 하곤 했던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많아졌다”고 했다. 

부부는 작은 집을 매개로 ‘휴식은 집에서, 생활은 마을에서’라는 라이프 스타일을 결정했다. 또한 오도이촌의 목적을 체험이 아닌 ‘체류’에 두기로 했다.

이들은 “세종시 주민들의 라이프 스타일 중 하나는 바로 주말농장”이라며 “하지만 이는 대부분 주말에 잠깐 와 땀 흘려 일만 하다가는 체험에 그치고 있다”고 했다. 그늘 한 점 없는 땡볕에서 내내 곡괭이질만 하다가 피로감만 쌓은 채 주말을 온전히 향유하지 못한다는 것.

이들은 “작은집에서는 텃밭에서 재배한 것을 먹을 만큼만 씻어 가족들과 먹고, 심심하면 나가 작물을 일구고, 저녁이면 누워 별을 보고 잠들 수 있다”며 “잠깐이지만 그 마을의 주민처럼 사는 것이 바로 주말 체류형 농장”이라고 했다. “귀농귀촌이 대세라지만, 실제 농촌 생활이 맞지 않아 다시 돌아가는 경우도 많다”며 “큰 돈 안들이고 실패해도 부담스럽지 않도록 작게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도 했다. 


전의면 토지공동구매… 마을 만들기 프로젝트 돌입

오이집의 임시 거처를 찾아 돌아다니면서 부부는 깨달았다. 젊은 이주민들을 위해 땅을 내어줄 사람은 없고, 어쩌면 이 작은집은 기존 마을에서 이질적인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이들은 “차라리 세종에서 우리와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을 모아 마을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했다”며 “결정적으로는 땅 임대를 알아보면서 퇴짜(?)를 많이 맞아 여럿이서 큰 땅을 공동구매해 나누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부부는 커뮤니티와 블로그를 통해 토지공동구매 모임을 열었다. 첫 모임에는 14가구가 참여했고 이후에는 수십 가구가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했다. 물론 이 중에는 공동구매를 통해 토지를 싸게 구입해 되팔려는 투기가 목적인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은 “마을의 목적과 취지에 동의하면서 안전한 통학이 우선인 취학기 아이들이 없는 9가구가 최종적으로 남게 됐다”며 “무엇보다 참여자 10명 중 7명이 공동으로 토지를 구매해 싸게 되팔려는 투기꾼이었는데, 결국 모임의 순수함(?)에 못 견뎌 떠나거나 개발이 안 될 땅들만 보고 다니는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걸러졌다”고 했다.

오도이촌 생활이 아닌 실거주 목적으로 마을에 들어올 가구도 있었기 때문에 이들은 일부러 수년이 흐른 뒤에도 개발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을 땅을 골랐다. 

마을 주민들은 30대 초반부터 50대 후반까지로 디자이너, 교수, 이전공무원, 경력단절여성, 학원강사 등 다양한 직업군으로 구성됐다. 대부분 정년퇴임과는 거리가 먼, 치열한 출퇴근 전쟁이 한참 남아있는 직장인들이었으며 동시에 타지에서 온 이주민이었다.

올해 1월 세종이로 이주한 김명미(41) 씨는 이전공무원인 남편을 따라 내려오느라 직장을 그만뒀다. 그에 따르면 이주 후 3개월 여 간은 병원만 안다니는 수준(?)의 우울증을 겪었다. 그는 “객지에서 내려와 마음 붙일 곳이 없었고 하다못해 저녁 때 소주 한 잔 같이 할 사람이 없어 집에서 혼술을 하기도 했다”며 “이런 ‘섬’에 사는 듯한 느낌은 이전공무원과 그 가족들이라면 다 비슷할 것”이라고 했다. 

첫 모임부터 참여해 최종 9가구에 들어간 김 씨는 마을 내에 반려견을 마당에 풀어놓고 키울 수 있는 작은 전원주택을 짓고, 실거주할 생각이다.  

비암사 앞 ‘별꽃마을’… 마을 문화 조성 프로젝트 기획
 

공동토지는 기존 마을과 있으면서도 도로 접근성이 좋은 곳을 찾았다. 최종 선정지는 전의면 다방리 비암사 앞. 예비 마을 주민들은 산으로 둘러싸여 은하수가 보이는 풍경을 가진 이곳을 ‘별꽃마을’로 칭하고 토목작업을 준비 중이다.

부부의 오이집은 마을이 완성될 내년 8월 에어비앤비 등을 통해 체류를 원하는 이들에게 개방될 예정이다. 이어 두어 채 정도를 더 마련, 장기임대를 통해 마을 문화를 함께 만들어갈 주민을 받을 계획이다. 

부부는 “외롭고 연고 없는 분들의 보호막이 되고, 즐겁게 장기로 머물다 갈 수 있는 마을을 만들고자 한다”며 “마을 한 가운데에 마을회관을 만들어 인문학 강좌 등 각종 문화강연을 열고, 마을 주민과 지역 예술가들의 작품도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허브 재배, 패브릭 공예, 야생화 자수, 장아찌 담금 전문가, 풍물, 수제 맥주 제조 등 마을 주민들의 다양한 재능을 마을 문화 조성에 활용, 지역 예술가들과도 연계해 마을 잡화점도 운영할 생각이다.

이들은 “관 주도의 사업이 아닌 마을 주민들이 자신의 재능으로 직접 기획해 마을 문화를 만들어나갈 계획”이라며 “향후 새로운 마을 공동체 모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이들은 “집은 작을수록 자연과 가까워진다. 복잡한 도시를 떠나 아주 단순한 곳으로 떠나고 싶은 현대인이라면 작은집에 매력을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도시에서 온갖 것들을 꾹꾹 채우고 있다. 그것은 인스턴트 음식일 수도 있고, 스트레스일 수도 있으며 때로는 외로움과 고독일 수도 있다. 복잡함 속에서 갈구하는 단순함. 새로운 마을공동체를 꿈꾸는 ‘별꽃마을’의 모습이 더욱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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