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대한민국이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당장 내일이라도 국정이 파탄날 것 같은 분위기다. 마치 정권이 무너지고 바뀌는 과도기 현상 같다.
닭을 잡기 위해서는 식칼이면 족하다. 창과 장검으로 닭을 잡는다면 그야말로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나라가 어려울 때, 국정이 힘들 때 비난과 질시보다는 대책과 대안이 필요하다. 잘못한 것이 있다면 빨리 고치면 된다. 그리고 두 번 다시 잘못을 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하야’니 ‘탄핵’이니 하는 말보다 잘못한 것이 많이 있으니 빨리 ‘바른 길(正道)’로 갈 수 있도록 통로를 만들어줘야 한다. 대한민국이 혼란에 빠지면 결국 손해는 대한민국 국민이요, 이익을 보는 측은 북한의 김정은뿐이다.
영규대사를 회상하다
29일 오후 계룡산 갑사(甲寺)로 향했다. 단풍도 그리웠지만 이날은 기허(騎虛) 영규(靈圭)대사의 순국 424년을 기념하는 ‘호국의승추모재(護國義僧追慕齋)’가 열리는 날이다. 해마다 참석하는 자리지만 올해는 예년과 달리 발걸음이 무거웠다. 영규대사의 영정을 보면 무슨 말을 드려야 할지, 영 자신이 없다. 지금의 나라 실정을 말씀드리면 ‘혼만 잔뜩 얻어먹을’ 그런 기분이다.
갑사에 도착하니 주차장이 만원이다. 주로 단풍을 구경하러 온 구경꾼들이다. 일주문을 지나 제일먼저 계곡 오른편의 영규대사 비각(碑刻)을 찾았다. 영규대사님이 마지막으로 가신 곳이다. 왜병에 항전하다 부상을 입고 창자가 몸 밖으로 빠져나올 정도의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 배를 움켜잡은 채 순국하신 곳이다. 지금도 그분의 나라를 위한 고성(高聲)이 귀전에 우렁차다.
비각 옆 시문(詩文)을 자세히 살펴본다. 누군가 쓴 영규대사를 추모하는 비(碑)다. 초라하고 볼품없다. 세월의 흔적이 있어 글자도 희미하다. 계곡에서 물을 떠다 깨끗이 닦고 보니 선명하다. 천천히 영규대사님을 회상하며 읽어본다.
천지가 유린되는 임진왜란 말발굽에 / 칡넝쿨 마디마다 의병 꽃 피어나고 / 풀잎도 날 세워 싸움터에 합할 때 / 장삼을 방패삼아 낫 들고 일어나서 / 빗발치는 조총 알을 몸으로 막으시며 / 청주성 탈환하신 거룩한 대사님이여! / 여기! / 그날의 함성모아 임 곁에 묻습니다.
민중에게 깨어나라고 외치시는 듯
여기에서 잠시 영규대사가 누구인가 알아보자. 그는 공주 출신으로 계룡산 갑사에서 출가한 계룡산 인물이다. 그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수백 명의 의병을 모아 왜적이 점령하고 있던 청주성을 공격하여 수복한 주인공이다. 또한 1592년(선조 25) 8월 저 유명한 금산성 전투에서 중봉 조헌(趙憲)과 함께 왜적에 대항하다 전사한 의승(義僧)이 아닌가.
그는 왜란이 일어난 뒤 승병을 최초로 모집하여 전국에서 승병이 궐기하는 도화선이 되었으며 나라위해 몸을 던진 최초의 승려이기도 하다. 지금은 금산의 칠백의총 종용사(從容祠)에 제향 되어 있는 우리지역의 대표적인 애국충절을 온 몸으로 보여주신 자랑스러운 분이다.
오후 1시30분 순국 424년 ‘영규대사 및 호국의승추모재’가 열렸다. 추모재에 이어 추모식이 있었는데 순서는 삼귀의, 반야심경, 추도묵념, 영규대사행장소개, 봉행사, 추모사순으로 진행됐다. 행사장 가운데에 모셔진 영구대사의 영정은 기이한 모습을 하시고 무언가 한껏 불자들에게 꾸지람 하시는 모습이다. 저 계룡산의 정기를 한곳에 모아 온 몸에 지니면서 불자들에게 ‘깨어나라, 깨어나라, 민중이여 깨어나라’ 하시는 모습이다.
‘정치와 경제에서 탈피하며 중생을 구제하고 오로지 나라와 민족에만 힘쓰라’는 절규가 들리는 듯 했다. 영규대사행장(行狀)을 소개하는 스님은 살아있는 영규대사가 눈앞에 계시 듯 절절 애절한 목소리로 대사님을 소개하셨다. 스님은 영규대사가 ‘험난한 그 시절 비겁하고 무책임한 위정자를 대신하여 승병을 모아 나라를 지켰다’고 토로하면서 대사님의 네 가지 위대한 업적을 설명하였다. 그리고는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가자, 가자, 저 언덕으로 가자, 저 언덕으로 온전히 가면, 깨달음을 이루리라) 하시면서 지금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메시지를 던져 주셨다.
허물 있으면 고칠 기회는 줘야
추모재에 이어 산사음악회도 이어졌다. 계룡산과 갑사, 그리고 청명한 가을날 낙엽과 단풍이 어우러진 멋진 음악회다. 이따금 가을의 청명한 하늘과 하늘을 나는 아름다운 새들이 음악회를 축하해주고 있었다. 빨강, 노랑 등 여러 가지 색으로 물 들어가는 갑사의 가을은 나무들의 화려한 변신이다. 모처럼 아름다운 산사음악회를 관람하니 가슴이 확 뚫리는 것 같다. 음악회가 끝나니 전국에서 모인 불자들이 제 갈 길을 가기위해 분주하다. 갑사에서 집으로 내려가는 길은 예전의 길과는 좀 다르다. 자꾸 영규대사의 힘찬 외침이 들리는 듯하다.
그의 외침은 무엇일까. 잘못한 위정자를 채찍질하라는 것일까. 아니면 부처님처럼 무한한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는 말씀인가. 선뜻 답을 내리지 못한다. 다만 내가 공부한 공자(孔子)님의 말씀만 귓전에 맴돌 뿐이다. 그는 ‘모든 인간은 ‘실수할 수 있다’고 하면서 실수나 잘못을 탓하지 않았다. 다만 ‘허물이 있는데도 고치지 않는 것이 곧 허물’이라고 말했을 뿐이다. 우리는 어떠한가. 허물을 발견하고도 고칠 기회를 주었는가. 아니면 기회도 주지 않고 ‘속았다’고 하면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가. 천천히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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