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등부터 꼴찌까지, 너희들의 성장을 ‘기다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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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등부터 꼴찌까지, 너희들의 성장을 ‘기다릴게’
  • 한지혜 기자
  • 승인 2016.10.12 15:3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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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고운중 1학년 10반 김은지 교사 & 박상후·김나원·홍설영·최서연 학생

하굣길 “아, 우산 안 챙겨?” / 어딜 가서든 하는 말 / “우산 안 챙겨?” / 내가 아니라도 성하는 다른 사람을 챙겨주는 그 마음 / 나도 이제, 성하처럼 철 좀 들어야겠다 「예훈이가 성하에게」 -정예훈

수학을 싫어하는 예훈이가 지각쟁이 성하를 주제로 쓴 시다. 이 작품은 최근 고운중학교 1학년 10반 학생들이 발간한 학급문집 ‘기다릴게’에 수록됐다.

SF 블록버스터가 된 릴레이소설부터 시험에 대한 압박감을 담은 시, 관심사에 대한 설명문과 친구의 이름으로 지은 삼행시까지. 중학교에 올라와서 느낀 두려움과 설렘이 고스란히 한 권의 문집에 담겼다.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 솔직담백한 글들이다. 이를 지도한 김은지 교사와 편집위원으로 활동한 학생들을 만나 평범한 글이 활자로 인쇄되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들어봤다.

몰랐던 친구의 새로운 모습, “마냥 장난꾸러기인줄만 알았는데…”


문집에는 반 학생 전원의 작품이 골고루 실렸다. 올해 4월부터 9월까지 국어 수업시간과 자율시간 등 교과과정을 통해 모은 글들이다. 
 
박상후 학생은 “각자의 원고를 모아 방학 기간에 모여 타이핑 작업을 했다”며 “이 과정에서 전에는 몰랐던 친구들의 새로운 면과 생각들을 알게 됐다”고 했다. 

겉으로는 내성적이고 조용했던 친구의 글에서 어른스럽고 깊은 생각을 발견하기도 하고, 몰랐던 친구의 꿈을 알게 되기도 했다는 것. 

최서연 학생은 “문집을 만들면서 친구들이 가졌던 시험에 대한 압박감이나 괴로움 등에 공감했다”며 “친구들의 감정과 사생활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모두들 원고를 정리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으로는 ‘맞춤법’을 꼽았다. 맞춤법이 틀린 곳이 많아 직접 검색해보고, 선생님께 여쭈어 보는 과정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는 것.

최서연 학생은 “맞춤법이 헷갈려 매번 찾아봐야 했고, 악필인 친구들이 많아 글씨를 알아보기가 힘들었다”고 했다.
 
15년 뒤 우리들의 모습은 어떨까? 미래 일기 통해 꿈 설계

문집에 수록된 ‘15년 뒤 나의 일기’에는 반 친구들의 글이 모두 실렸다. 15년 뒤 동창회 전 날을 가정하고, 자신의 미래에 대해 썼는데, 카메라맨, 소설가, 의사, 가수 등 다양한 직업군이 등장했다.

홍설영 학생은 “글로 써보니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15년 뒤로 날아가 나를 눈앞에 마주한 느낌이었다”며 “내가 지금 꾸고 있는 꿈이 정말 현실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특히 이 학생은 문집을 통해 처음으로 아버지의 편지를 받기도 했다. ‘사랑하는 가족들의 편지’를 주제로 실린 문집의 한 코너를 통해서다.

홍 양은 “평소 퇴근이 늦은 아빠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없었다”며 “이번 기회를 통해 처음으로 아빠의 편지를 받았는데, 고향 안동에 대한 이야기와 농사의 고단함에 대해 말씀해 주셔서 새로웠다”고 했다.

이어 그는 “아빠의 편지도 감동이었지만, 다른 친구들의 가족들이 써준 편지를 읽고 세상 모든 부모의 마음은 다 똑같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출판사 창비 통해 제작… “릴레이 글쓰기로 협동심 길러”


학급문집이 거의 사라져가는 추세다. 학기를 마치는 방학식 즈음에 한 권씩 나눠 갖고 집으로 가져가 읽었던 문집의 추억은 이제 먼 일이 됐다. 

김은지 교사는 지난 4월 창비 출판사에서 지원하는 학급문집 발간 캠페인을 알게 됐고, 반 아이들 몰래 신청서를 넣었다. 선정 소식은 방학식날 아이들에게 전달돼 여름 내내 원고 정리 작업에 매진했다.

그는 “국어 선생님이다보니 평소 아이들에게 쓰라고 하는 것들이 많다”며 “아이들이 글쓰기를 재미있어하지 않아 수련회 체험문은 뉴스대본으로, 시와 소설은 아이들끼리 릴레이로 써보게 했다”고 했다.

이어 “진로와 연계해 15년 뒤 나의 일기, 관심 분야에 대한 설명문 등 아이들 스스로 적성과 흥미를 고민해보는 글쓰기 시간을 가졌다”고 설명했다.   

아이들은 툴툴대면서도 이내 재밌게 자신만의 글을 써내려갔다. 무엇보다 함께 쓰는 글을 통해서는 서로에 대한 이해와 협동심을 길렀다.

그는 “요즘 아이들이 스스로 왕따가 되려는 경우가 많아 걱정이었다”며 “누군가에 의한 따돌림이 아니라 스스로 ‘혼자’를 선택하는 경향이 많아진 것인데, 이는 사회성이 부족하고 다가가는 법을 알지 못한 데서 비롯된 일”이라고 했다. 

문집 제목 ‘기다릴게’의 의미… “아이들은 씨앗과 같아”

학급 문집 제목 ‘기다릴게’는 평소 김 교사가 아이들에게 자주 하는 말에서 비롯됐다. 조회나 종례 전 떠드는 아이들에게 ‘조용히 해’라는 말 대신 ‘기다릴게’라고 말했던 것이 그의 유행어가 된 것.

그는 “문집 제목을 정하고자 아이들에게 물었더니 뜬금없이 여기저기서 ‘기다릴게’라는 성대모사(?)가 돌아왔다”며 “평소 자주 했던 말이 아이들에게는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 교사는 지난 2008년 교직생활을 시작해 최근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했다. 이 문집은 그에게도 특별한 의미다.
 
그는 “‘기다릴게’라는 말은 아이들이 ‘왜 잘못을 고치지 못할까’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기다려주자는 스스로의 다짐”이라고 설명했다.

흙 속에 심은 씨앗에 물을 주면서도 ‘왜 안나오지?’라는 의구심을 반복하곤 하는데, 사실 새싹은 보이지 않는 흙 속에서 조금씩 자라나고 있다는 것. 

그는 “겉으로 보기에는 그대로인 것 같지만 아이들은 씨앗 속 새싹처럼 스스로 조금씩 자라나고 있어 기다림이 필요한 것”이라고 했다. 

‘시험이 끝나도 마음은 지옥’, 교사조차 몰랐던 아이들의 감정

큰 돌덩이가 있는 것처럼 / 마음이 무겁다 / ()시험이 끝나도 / 엄마의 물음에 /마음은 지옥이다「시험이 끝나니...」 -최준민

중학교 첫 시험을 마치고 쓴 시에서는 아이들의 압박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김 교사는 “지옥 같은 시험, 공포, 두려움 같은 단어들이 시어로 쓰이는 것을 보고 교사로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며 “자녀의 글을 읽은 학부모들 역시 같은 마음에서 울먹이며 전화를 하시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글은 우선 자기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 기본”이라며 “글을 나누는 것은 서로 공감하고 이해한다는 의미이고,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밀한 관계로 발전하는 것”이라고 했다. 

고운중 1학년 10반 아이들은 교칙을 어긴 경우 60가지 주제 중 한 가지를 택해 ‘달벌일지’를 쓴다. 달벌은 ‘달게 받는 벌’을 뜻하는데, 글쓰기로 일종의 벌을 내리는 셈이다.

그는 “뻔한 잔소리를 하지 않기 위해 도입한 달벌일지가 벌써 4권이 넘어갔다”며 “아이들은 때론 실수를 하기도 하지만 그때마다 자신을 돌아보는 글을 통해 성장하고 있다”고 했다.

한 권의 문집에 담긴 아이들의 성장과 이를 바라보는 교사의 메시지. 매번 실수하고, 때론 30점짜리 시험지를 받더라도 선생님은 언제나 ‘기다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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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동 주민 2016-10-11 20:04:51
얼굴도 마음도 너무 멋진 선생님이시네요.
잘 배운 아이들이 쑥쑥 커가는 상상에 맘이 훈훈해집니다.
울 애도 내년에 고운중학 보내야겠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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