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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이 바꿀 우리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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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이 바꿀 우리 사회
  • 임연희 기자
  • 승인 2016.11.22 09: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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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마루에서] 임연희 교육문화부장

# 생일을 맞은 딸 아이 유치원에 케이크와 음료를 보내도 될까?
# 초·중고교 운동회나 수련회, 체험학습에서 반장 엄마가 교사들에게 김밥과 음료를 제공하는 것이 가능할까?
# 고3 아들의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간식을 돌리는 것은 어떨까?
# 스승의 날 카네이션 한 송이 사 보내는 것은 괜찮겠지?
# 고3 딸의 담임교사에게 "수능시험이 끝나면 보답하겠다"고 이야기해도 되지 않을까?

* 교원평가 기간에 고3 담임교사가 야간자율학습을 하는 반 아이들에게 우유와 빵을 사주었다. 교사가 학생에게 교원평가에서 잘 봐달라는 대가성이 성립할까?

 

* 특성화고 교사들이 중학교를 방문해 진학설명회를 하면서 학교 로고가 새겨진 볼펜 한 자루씩을 학생들에게 나눠주는 것은 괜찮을까?
* 스승의 날에 색종이로 만든 꽃을 담임교사에게 선물하는 것은 어떨까?

 

교사와 학생, 학부모 간에는 직무관련성 있어 ‘김영란법’ 제재대상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대로라면 #의 사례는 법에 저촉되고 *표시는 가능한 행위다. 학생에 대한 지도, 평가 등 업무를 담당하는 교사와 학생, 학부모 간에는 직무관련성이 인정될 수 있어 3만 원이하의 음식물 또는 5만 원이하의 선물을 제공하더라도 김영란법의 제재대상에 해당할 수 있다.

 

교사가 학생들에게 음료와 빵을 사준 경우는 받는 사람이 공직자가 아닌 학생이기 때문에 교원평가 기간이라도 김영란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담임교사가 아이들에게 간식을 사주는 것도 가능하다. 특성화고 교사들이 중학생을 대상으로 한 진학설명회에서 기념품을 주는 것도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특성화고 교사들이 직무관련성이 있는 중학교 교사들에게 음료수를 주는 것은 김영란법 위반 소지가 있다. 스승의 날에 돈을 주고 생화를 사서 보내는 것은 '금품'에 해당하지만 아이가 색종이로 직접 만든 꽃이라면 대가성이 없다는 게 국민권익위원회의 해석이다. 초등학교 1학년 담임교사가 아이에게 사탕 한 개를 받아도 법에 저촉될 정도니 복잡하고 무서운 세상이다.

 

김영란법 시행 1주일을 맞은 우리 사회는 급격한 변화와 혼란을 겪고 있다. 소풍 때 반장이 담임교사의 도시락을 챙기고 학부모가 학교를 방문할 때 음료수 한 상자 들고 가는 등 그동안 정(情)이자 예절이라고 여기던 행위들이 부정청탁에 해당되니 말이다. 법 시행 후 골프장 예약이 줄고 북적이던 고급식당도 한산해 납작 엎드려 지켜보자는 풍조와 더치페이 문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학부모도 교사도 불편한 상황에서 "김영란법 때문에"

 

 

수학여행과 체험학습 철을 맞아 시도교육청들은 청렴교육을 강화하고 있으며 학부모에게도 부정청탁 관련 가정통신문을 보내 이해를 돕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교사와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찬반이 있지만 대체로 긍정적 의견이 많다. 학부모 상담주간에 빈손으로 학교에 가기 불편했던 학부모와 음료수 상자를 돌려보내기 민망하던 교사들은 "김영란법 때문"이라는 좋은 구실이 생겼다고 좋아한다.

 

이 법이 아니어도 대부분 학교에서는 교사들이 모은 회비로 체험학습 등 야외활동 때 김밥을 사가거나 현장에서 간단히 사먹는다. 교사들이 걷은 돈으로 교무실에 생수와 커피 등을 준비해 뒀다가 학부모 방문 때 내놓기도 한다. 학부모가 간식을 돌리기보다 교사가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과 음료를 사 먹이는 일이 더 잦다. 이런 학교와 교사들에게는 김영란법의 규제가 그리 새로울 게 없다.

 

대한민국에서 '정'이란 이름 아래 관행적으로 이뤄져온 소박한 마음 주고받기까지 법의 잣대를 들이댄다는 점에서 김영란법에 일부 비판적 시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동안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시 여기고 옳지 못한 행위를 옳은 양 버젓이 해왔던 우리 사회의 병폐를 되돌아보면 이 법의 필요성은 충분하다.

 

김영란법은 2011년 한 변호사가 내연의 여검사에게 횡령사건을 청탁한 대가로 벤츠승용차를 선물하면서 발단이 되었다. 법원은 청탁에 의한 대가성 정황은 있지만 현행법으로 처벌이 불가능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굵직한 비위사건이 터질 때마다 고위 공직자나 정치인들은 "대가성이 없다"며 교묘히 법망을 피해갔다.

 

우리 사회 건강하고 투명하게 발전시키는 촉매제 될 것

 

이런 점에서 법 시행 초기부터 이런 저런 예외를 인정하기 시작하면 더 큰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졸업 전 취업한 학생들이 수업에 참여하지 못해도 학점을 주던 이른바 '취업계'가 부정청탁 논란을 빚자 교육부가 대학에 학칙개정을 통해 특례규정 신설을 지시한 것은 좋은 방안이 못된다. 대학들은 온라인 강좌 수강과 주말 출석수업 등 대안을 마련 중이지만 취업한 학생들로서는 쉽지 않은 과정이다.

 

이보다는 기업들이 9~11월 사이 채용을 확정했더라도 몇 달 기다렸다가 기말시험이 끝나는 12월 중순 이후나 1월에 입사시키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게 나을 것 같다. 기업 입장에서 당장 인력이 필요하면 졸업생들 가운데 채용하면 된다. 극심한 청년실업난 속에서 백수 졸업자들도 허다한데 졸업까지 한 학기나 남은 학생들을 서둘러 데려가야 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

 

김영란법 시행 전보다 골프장 이용객이 절반가량 줄었다고 아우성이며 식당과 꽃집 같은 곳의 매출 하락을 보면 내수침체 우려도 있지만 그동안 비정상적으로 이뤄지던 접대문화의 거품이 빠지려면 거쳐야할 과정으로 보인다. 다소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장기적으로 볼 때 김영란법은 우리 사회를 더 건강하고 투명하게 발전시키는 촉매제가 될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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