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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이주 '삼형제 엄마', 세종에서 영어 강사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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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이주 '삼형제 엄마', 세종에서 영어 강사 되다
  • 한지혜 기자
  • 승인 2016.08.16 11:1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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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필리핀 이주 여성, 도담초 방과후 영어 강사 웰라로즈(31)


방학 중인 세종시 도담초등학교 교실이 아이들의 목소리로 소란스럽다. 선생님이 영어로 설명해주는 단어를 맞추기 위해 너도 나도 손을 들고 외친다. “Here! Here!”

 

지난 12일 오전 10시 도담초를 찾았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6학년까지 총 10여명의 아이들이 방학 중에도 영어 수업을 듣기 위해 교실에 모였다.

 

이 수업의 강사인 웰라로즈(31)씨는 10살, 9살, 8개월 된 삼형제를 키우는 필리핀 이주 여성이다. 한국에 온 지는 10년째. 방과 후 강사로 일한지 5년 됐고, 다문화 교육에 나선 지는 6년째다.

 

세종에서 이주 여성은 지난해 기준 600명을 넘어섰다. 다문화가정 학생도 매년 증가하는 추세여서 2012년 출범 후 121명이었던 다문화 가정 학생 수는 ▲210명(2014년) ▲301명(2015년) ▲398명(2016년 3월 기준)으로 늘어났다.

 

세종시 다문화 학생 비율은 1.25%로 전국 평균보다 다소 낮은 수치지만, 가장 높은 학교(28.3%)를 고려했을 때 학교별 편차가 큰 편이다. 읍면지역의 다문화 학생 비율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반면 신도심지역은 학생 수 증가로 증가폭이 둔화되는 경향을 보이는 것. 


이주 10년차인 웰라로즈씨는 "지금과 같은 사회·경제적 활동은 이주 초기만 해도 꿈꿀 수 없던 일"이라고 했다. 다문화사회를 지향하면서 아직 ‘한문화’에 머물고 있는 사회인식은 물론 교통이 불편한 세종 전동면에 거주하면서 한국어를 배우고 영어 지도사 자격증을 따기까지 말 못할 어려움이 많았기 때문이다.

 

고향을 떠나온 그는 어떤 생각으로, 또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다문화 센터가 내민 ‘손’…“외로움이 가장 힘들어”



국궁선수 출신인 남편과 결혼해 삼형제를 키우고 있는 웰라로즈씨. 그는 10년 전 결혼과 함께 세종 전동면으로 이주, 3년 간 육아에 전념하면서 책으로 한국어를 독학했다.

 

그는 “처음 이주했을 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3년 간 한국어를 혼자 독학했다”며 “이후 세종시다문화센터에서 연락이 와 일주일에 두 번 한국어 방문교육을 받게 됐다”고 했다.

 

세종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한국어 방문교육을 통해 언어 실력을 키운 것. 꾸준한 수업으로 지난해에는 한국어 토픽 4단계를 땄고, 센터를 통해 3개월 간 청주를 오가며 영어 지도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그는 "의사소통과 더불어 이주 후 겪었던 가장 큰 어려움이 문화 차이였다"고 했다.

 

그는 “필리핀에서는 나이에 상관 없이 자유롭게 식사하는 문화에다가 반찬도 한 두 가지면 충분하다”면서 “한국에서는 어른부터 드신 뒤 수저를 들고, 반찬도 한 끼 식사에 여러 가지가 올라가 요리하는 것이 특히 어려웠다”고 했다.

 

이어 그는 “첫 해에는 눈이 오는 한국의 겨울을 견디는 게 무척 힘들었지만 지금은 여름보다 겨울이 더 기다려진다”며 “한국의 여름이 필리핀보다도 훨씬 더운 느낌이어서 여름이 빨리 지나가길 바란다”고 했다.

 

이제 그는 필리핀 음식보다 한국 음식에 훨씬 능하고, 필리핀에는 없는 한국의 추운 겨울을 기다리고 있다. 이주 10년 만에 한국 문화와 기후에 완벽히 적응한 셈이다.

 

하지만 그 역시 과거 ‘외로움’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이주 초기 3년 간 사회활동 없이 육아에만 전념하면서 자신감 상실은 물론 우울증세까지 보였다고 했다. 

 

그는 “다행이 다문화센터 덕분에 한국어 강습 프로그램에 나가고, 필리핀 댄스동아리 활동에 참여하면서 사람들과 소통하기 시작했다”며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을 부끄러워했던 내성적인 성격도 밝게 변했다”고 했다.

 

방과 후 강사 활동…아이들에게 ‘자신감’ 주는 엄마로

 

세종교육청은 매년 다문화센터와 연계해 12명의 이주여성들을 선발, 방과 후 학교 강사 활동 기회를 부여하고 있다. 이주 여성들의 사회·경제적 활동을 촉진해 다문화 가정 등 이주민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다문화 교육 인력으로 활용해보겠다는 취지다.

 

그 역시 현재 방과 후 강사로 5년째 활동하고 있다. 조치원 신봉초, 부강초, 나래초, 도담초 등을 거쳐 현재 도담초에서는 3년째 영어 강의를 맡고 있다.

 

그는 “첫째 아이가 5살 때 첫 강사활동을 시작했다”며 “여기까지 온 건 함께 살고 있는 시부모님과 남편, 아이들이 보내준 응원의 힘이 컸다”고 설명했다.

 

예민한 시기를 겪고 있는 아이들은 엄마의 존재로 인해 오히려 자신감을 얻고 있다. 자기 또래의 학생들을 가르치는 영어 강사로 활동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색다른 인식을 갖게 된 것.

 

그는 “현재 10살인 첫째 아들은 ‘자신은 영어 방과 후 수업을 집에서도 들을 수 있다’며 자랑스러워한다”면서 “출근할 때마다 응원해주곤 하는데, 엄마가 일을 하고 사회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매번 준비하는 수업 내용을 자녀에게도 적용, 직접 영어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그는 “덕분에 자녀들은 자연스럽게 영어를 습득하고, 발음적인 측면에서는 원어민에 가까운 수준을 보인다”고 했다.

 

“영어 주입식 교육 안쓰러워”…‘참여형’ 수업 지향



그는 일주일 중 4일 영어 수업을 하고, 그 중 이틀은 영어 돌봄 교실도 맡고 있다. 돌봄 교실 일정이 있는 날에는 퇴근 후 저녁시간이 다 돼서야 집에 돌아오곤 한다.

 

그가 일을 하면서 가장 보람 있을 때는 수업에 소극적이었던 아이들이 점차 변화하는 모습을 볼 때다. 조용히 입을 꾹 다물고 있었던 아이들이 어느 샌가 손을 들고, 스스로 발표하려고 나서는 모습을 볼 때 가장 뿌듯하다는 것.

 

그는 “아이들이 억지로 영어를 배우는 모습을 보면 안쓰러울 때가 많다”며 “이 수업만큼은 아이들이 즐겁게 영어를 배우고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수업은 참여형으로 진행된다. 아이들이 다른 영어 수업을 통해 어느 정도의 단어들을 습득한 상태기 때문에 말하기 위주로 진행된다. “실수하더라도 계속 단어와 짧은 문장을 말하게 하는 게임이나 퀴즈를 많이 활용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주 여성 향한 조언과 다문화 교육의 ‘필요성’



그는 같은 이주 여성들에게 다양한 사회활동에 참여하길 조언했다. 특히 “초기 이주 여성들은 많은 사람들을 만나 한국어를 듣고 말하는 기회를 가져야 문화와 언어 습득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그가 강조하는 부분이다.

 

이어 그는 다문화 이해교육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6년째 다문화 교육 강사로 활동해온만큼 아이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다문화 교육의 효과를 직접 느꼈기 때문.

 

그는 “필리핀을 포함해 중국, 일본, 베트남 이주 여성 강사들이 그 나라의 문화, 언어, 음식, 교통, 의복 등에 대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며 “다문화 교육 시 아이들의 관심도가 높고, 질문도 많아 수업에 적극적인 편”이라고 했다.

 

기관별 다문화 가정 대상 프로그램은?

 

현재 세종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는 이주 여성을 대상으로 단계별 한국어 교육을 비롯해 ▲부모교육 ▲인권·성평등 교육 ▲한국 문화 교육 ▲공동육아나눔터사업 ▲가족봉사단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또 세종교육청에서는 ‘多(다)누림교육’ 사업의 일환으로 ▲부모님나라 방문 Dream 프로젝트 ▲이중언어 교육 ▲이주 여성 강사 인력풀 구축·활용 ▲다문화 예비·중점학교 운영 ▲다문화 맞춤형 멘토링제 등을 운영하고 있다.

 

다문화 교육이 강조되면서 기관에서 실시하는 다문화 프로그램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웰라로즈씨는 이러한 다양한 프로그램 중 다문화 가족 자녀를 대상으로 한 언어 치료·교육의 활성화를 우선 사업으로 꼽았다.

 

그는 “언어를 가르쳐줘야할 엄마가 서툰 한국어를 구사하다보니 다문화 가족 자녀들은 한국말이 서투른 경우가 많다”며 “이주 여성을 대상으로 한 한국어 교육도 중요하지만, 학교나 센터 내 자녀 언어 교육 프로그램도 더 활발해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끝으로 그는 계속 교육 분야에 종사하면서 세종시가 한문화 사회를 넘어 진정한 다문화 사회가 될 때까지 기여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교육 현장에서의 활동을 통해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긍정적인 변화를 겪었기 때문.

 

최근에는 그와 같은 이주 여성들이 모여 전통시장 내 작은 공간을 임대해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진정한 다문화 사회로의 도약, 또 다른 이주 여성들의 ‘세종시 정착기’를 들어볼 날이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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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사람 2016-08-16 21:41:35
멋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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