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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평균수명 81.2세, 조선시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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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평균수명 81.2세, 조선시대는?
  • 이승구 박사
  • 승인 2016.08.09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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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구박사의 명화와 삽화로 만나는 천년 의학여행] <1>동양의학의 태동

글을 시작하며


온고이지신(溫故而知薪), 옛것을 돌이켜 새것을 찾아 발전시킨다는 말이다. 고(故) 정주영 회장이나 이병철 회장 같은 경제 선구자들은 연말이면 꼭 일본을 찾아 구멍가게부터 최상의 경제 분야까지 과거의 일본이 현재의 일본으로 발전된 과정을 되돌아보았다고 한다. 한국이 일본의 20년 전을 닮아 뒤 쫓아 가고 있다면서 우리 한국의 10년, 20년 후의 미래 발전상을 예견하곤 회사의 경영방침에 도입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구전(口傳)되거나 몇 십 몇 백 년 전의 옛날 책에 인용된 의학적 사안들을 보면 그것이 성공했거나, 혹은 비록 실패했던 의학적 사건이라 할지라도 모두 현대의학으로 발전하는 기초가 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특히 오래된 명화나 삽화 속 의학 그림들은 과거 그 시절의 의학수준을 보여줌은 물론, 그 그림을 그린 화가들의 질병 묘사에 관한 정확성과 창의력(artistist’s creativity)은 현대의 우리도 놀랄 만큼 섬세하다. 예컨대 그림 속에 나타난 르누아르의 류마티스 환자, 모네의 백내장환자와 정신질환 환자의 그림들을 보면 화가들이 당시의 유행 질병들을 정확히 이해하고 묘사했음을 알 수 있다.


필자는 과거의 의학 내용들을 담고 있는 명화나 삽화 및 조각들을 분석하면 연혁에 따른 유행 질병과 그 대처법 및 현재 치료법의 개선상황을 예측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향후 우리 인류의 예상되는 호발 질병과 치료에 관한 정보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물론 고대의학은 초자연적 현상만으로 모든 질병의 발생과 치료에 임하였다. 무당이나 주물사, 교회의 사명으로 여긴 사제나 수녀들, 동양의 한의사들은 현대인의 안목으로는 비상식적인 부분들이 있긴 하지만, 당시에는 환자들의 치료자에 대한 절대적 믿음이 있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과거의 명화나 삽화, 벽화나 조각 등에 묘사된 의학적 사실들을 찾아보면 현대의학으로의 발전 역사는 물론 미래의학의 도약을 예측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오랫동안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 밀라노의 구겐하임 미술관, 런던 박물관과 옥스포드 대학도서관, 파리 루브르 미술관 등 세계 유명 박물관들을 답습하고 명화 속 고대의학의 단면들을 찾아 섭렵하였다.


비록 의학을 소재로 한 미술작품은 예술의 근간이 될 수 없었을 정도로 희소했지만, 힘들여 발견한 백여 장의 고대의학 예술품들을 보고 현대 의학으로의 발전 자취를 알아보고자 한다.


동양의학의 태동


동양의학은 예부터 음양오행(陰陽五行), 사상(思想), 기(氣) 등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학문을 바탕으로 한다. 세상의 모든 이치는 음양(陰陽)이 있고, 사람의 체질을 알면 건강상태를 알 수 있어 모든 병을 뜸이나 침, 보양제와 환자의 마음으로 고친다는 의학이다.


그중 대표적인 중국의학은 약 2000년 전부터 기록이 남아 있다. 인도와 티베트의 영향을 받아 질병의 자연적이고 성스러운 접근치료를 하였다. 즉 건강과 질병을 점성학적 또는 귀신 등의 초자연적 변화로 설명하면서 초목을 이용한 자연약제, 마사지, 뜸, 침술 등이 주 치료였다. 19세기부터는 손목의 요골동맥에서 촉진하는 맥박의 위치나 깊이에 따라 환자 질병의 복잡함을 호흡, 정서 상태 및 열(熱)과 함께 확진하고 치료했다.



중국의 고대의학이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은 고조선 이후 한사군 시대로, 특히 낙랑군과 중국과의 밀접한 문화교류를 통해 고구려, 백제, 신라의 순으로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후 우리나라 한의학은 독자적인 발전을 거쳐 조선시대 선조의 명으로 허준(1539-1615)이 편찬하기 시작한 동의보감(東醫寶鑑) 25권 25책이 광해군 5년(1613)에 목활자로 간행되었다. 이후 1724년 일본판, 1763년 중국판 동의보감이 편찬되고, 마침내 2009년 7월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에 등제되기에 이르렀다.


국내에서 자생한 한의학(韓醫學)은 중국의학(漢醫學)과는 달리 같은 병이라도 네 부류의 환자체질에 따라 달리 치료해야 한다는 이제마의 사상체질(四象體質) 의학으로 이어지게 된다. 개인의 보건, 영양, 생활섭생, 예방의학에 이르기까지 독특한 체질 생리학과 체질 병리학을 설정하여 한국의 독자적인 한의학을 태동시킨 것이다.


중국의 의술은 BC 200년경에 만들어진 ‘황제내경(黃帝內經)’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며, 중국의학(漢醫學)의 시작은 편작(扁鵲)을 꼽는다. 중국의 역사 서사기에 나오는 명의(名醫) 편작은 인간 질병의 치료는 약초와 뜸과 침 등으로 자가 치유능력을 작동시키는 것이 의학의 전부라 하였다. 현존하는 중국 최고의 의학서인 ‘황제내경’은 양생법을 강조함으로써, 중국의 고대의학은 섭생법과 양생법, 자가 치유능력을 기본으로 약제, 뜸, 침 등의 치료를 발전시킨 것으로 보인다. 동양에 세계화의 문이 열리기 시작한 18세기 말, 아편전쟁을 통하여 청나라와 중국에 서양의학이 유입되었다. 더불어 1970년대부터 침술마취가 임상에 적용되었다.


고대 일본의학은 백제를 통한 의술의 전파로 시작된다. 459년 일본이 백제에 의사를 보내달라고 요청하자 개로왕은 고구려 출신인 덕래를 파견하였고, 그는 일본에서 난파약사(難波藥師)라는 칭호를 받아 일본 의술의 시조가 되었다. 984년 일본의 탄바노 야스요리(911-995)가 편찬한 의학고서 ‘의심방(醫心方)’에는 백제와 신라의 의서(醫書)인 ‘백제 신집방(百濟 新集方)’과 ‘신라 법사방(新 羅法事方)’의 처방이 인용돼 있어 일본 고대의학의 시초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 선조, 광해군 때의 참의 허임이 저술한 한의서 ‘침구(鍼灸) 경험방’에는 침술, 뜸, 약제 등 민간요법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각 혈 자리의 위치와 작용, 침뜸법, 침뜸의 적응증과 금기증, 혈을 잡는 방법 등이 상세히 서술되어 있고, 일본에서도 간행됐다. 이처럼 한의학이 고대 일본의학에 기여 한 바가 크지만 18-19세기에 이르러서는 서양의학의 도래로 일본의 전통 고대의학은 뜸, 침, 마사지 및 보양제 등으로 축소되어 유지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고대 의료수준을 보면 영조(1724-1776)와 정조(1776-1800)시대의 실록에서 인구가 기껏 1800만 명 내외였던 1749년 역병 사망자가 560만 명이었고 인구 3-4명에 1명꼴로 사망하였다고 한다. 끔찍한 사망률이었지만 당시의 대응 방식으로는 화장 후 제사 지내는 것 이외는 별다른 대책이 없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100여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전염병이 창궐하면 약제 탕약, 사체의 화장 후 기도와 제사, 굿 외에는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야 했다.



2011년 현재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81.2세로 세계 상위 수준이다. 여성은 84.5세로 세계 6위이고, 남성은 77.8세로 세계 20위이다. 옛날 우리나라 사람들의 수명을 추정하려면 실록에 남아있는 조선시대 국왕 27명의 사망 연령을 보고 대다수 국민들의 수명을 예상할 수밖에 없다. 가장 장수한 조선시대 왕은 만 81세 5개월에 세상을 떠난 영조이며, 두 번째는 72세까지 산 태조 이성계이다. 70살(古稀)을 넘긴 임금은 27명중 불과 2명뿐이어서 인생 ‘70 고래희(古來稀)’라는 옛말이 들어맞는다. 그 다음으로 고종(66세), 광해(66세), 정종(62세)이 뒤를 잇지만, 회갑 잔치를 치른 왕은 몇 안 되며, 사망 연령은 평균 46.1세이다. 생활여건이 이들 임금들과는 큰 차이가 있었을 백성이라면 더 낮았을 것이다.


옛날 우리나라의 출생아 셋 가운데 하나는 네 살까지도 살지 못했고, 최장수 임금 영조의 자녀 14명 중 5명이 네 살을 넘기지 못했다. 2011년 현재 우리나라에서 첫돌까지 살지 못하는 아기는 300명 중 하나 밖에 되지 않는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합계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인 1.3이었다. 1960년의 6.2에 비하면 5분의 1 수준밖에 안 된다. 한국이 지난 60여 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가파른 수명 증가를 보인 이유에는 가장 급격한 출산율 감소도 한 원인이다. 보건복지 통계연보(2014년)에 의하면 2013년 현재 보건복지부에 등록된 의사면허의 수는 10만 9563명으로 1995년 5만 7188명의 거의 두 배이다. 1977년과 비교하면 35년 사이에 의사수가 여섯 배가 되었다. 


한국인들이 근대의료를 접하게 된 것은 대체로 1876년 2월 27일 일본과의 강화도 통상(병자수호, 고종13년)조약 이후 일본과 열강들에 나라 문을 열면서부터이다. 이후 1885년 최초의 국립병원인 제중원이, 1899년 국립 ‘의학교’가 설립되어 1902년 최초의 근대식 면허의사 19명을 탄생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 두 차례에 걸쳐 17명의 졸업생을 더 배출한 의학교는 1907년 ‘대한의원’으로 통폐합되었고, 1923년에 경성 제국대학 의학부 부속의원으로, 나아가 현 국립 서울대 의과대학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1904년에는 미국 선교사 언더우드에 의해 세브란스병원이 설립됐으며, 1952년에는 한의사 제도의 국내 도입과 함께 한의과대학이 설립됐다.


[대전선병원 이승구 박사 약력]


-현 선병원재단 국제의료원장 겸 정형외과 과장


<전문진료분야>

-소아정형, 골·관절 및 연부조직 종양, 수부정형, 류마티스질환
-골절정복술, 건, 인대, 신경수술, 양성종양절제술 등 1만6400여 수술례 


<주요 약력>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정형외과 주임교수
-여의도성모병원 부원장
-영국 옥스포드 Nuffield Center 정형외과센터 유학
-근정포장 및 훈장(2004)/ 옥조근정훈장(2013)
-SICOT 및 WPOA 국제위원
-대한골관절종양학회 회장(前)
-대한수부외과학회 회장(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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