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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는 내 작품의 ‘낙관’ 같은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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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는 내 작품의 ‘낙관’ 같은 존재”
  • 한지혜
  • 승인 2016.06.25 14:3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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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 『동숙의 노래』 펴낸 김세인 소설가
조치원 정착 후 세종에 보내는 전언 '눈길'



40여 년 서울 생활 접고 아들 따라 ‘세종행’ 택해 

배우 강부자 울린 글재주와 생생한 사투리 ‘구현’

예술인 ‘타운하우스’ 제시…올해 청소년 소설 출간

 

 

“너무나도 그님을 사랑 했기에 그리움이 변해서 사모친 미움……”


어릴 적 김세인(59) 작가가 즐겨 불렀던 문주란의 <동숙의 노래>. 그의 작품들이 저마다 한 소절의 노래를 낙관으로 지니듯이 올 1월 발표한 소설 「동숙의 노래」 역시 그랬다.

 

지난 4일 세종시교육연구원에서 문학창작 강의를 하고 있는 김 작가를 만났다. 열 명 남짓한 수강생들 중에는 그가 처음 강의를 시작했을 무렵부터 꼬박 7년 간 수강해 온 열성 제자도 있었다.

 

서울에서 40여 년이 넘는 세월을 보냈다. 조치원에 새 터를 닦은 건 2007년. 그는 “아들이 고려대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하면서 따라 내려왔다”고 했다. 20대 후반인 그의 아들이 소설가인 어머니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세종과 연이 닿게 된 것.

 

여주 출생, 경기도 사투리 녹여 낸 작품 多

 

“아마도 후대의 문학사가가 충남 보령의 이문구와 함께 대구의 김원일, 통영의 박경리 등 사투리 구사가 뛰어난 작가를 논한다면, 경기 남부의 사투리는 김세인을 꼽아야 할 것이다.”


시인이자 중앙대학교 교수인 이승하 선생은 소설집 『동숙의 노래』 해설에서 이렇게 평했다.

 

8대째 여주에 살고 있는 어머니의 입말체를 그대로 살려낸 덕분이다. 생생한 사투리 구현은 그 역시 여주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는 “작품 속 사투리 구사는 작중 인물을 그대로 살려내면서 소설에 특수성을 부여하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석수장이였던 아버지와 ‘손이 바빠야 입도 바쁜 법’이라는 모친의 지론 아래서 나물을 뜯고, 칡뿌리를 캐고, 버섯과 도토리를 따면서 자랐다. 그 시대 여자아이들이 좋아했던 고무줄놀이나 공기놀이에는 재미를 붙이지 못해 산으로 들로 나갔다.

 

그는 “기질적으로 집안에 갇혀있는 것을 싫어했다”면서 “나에게는 이 모든 것이 단지 놀이였다”고 했다. 위험하다고 야단맞기 일쑤였지만 다소 야생적(?)인 유년을 보낸 셈이다.

 

갈등 많은 모녀지간, 기질적으로 타고난 ‘흥’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자전적이다. 특히 모친과의 갈등구조가 작품 속에서 자주 드러난다는 점이 그렇다. 아들·딸 차별이 심하고, 학업에 있어 많은 제재를 당했지만 모친은 정서적으로 여유로웠다. 농사일로 몸은 바빴지만 가정형편은 비교적 유복했기 때문.

 

크고 작은 갈등을 겪어온 모녀관계에서도 통하는 게 하나 있다. 바로 ‘흥’이다. 그는 “노래를 좋아하는 모친의 기질을 이어받아 노래를 즐긴다”고 했다. 각각의 작품들이 한 곡의 노래를 낙관처럼 지니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모친과의 에피소드…라디오 방송서 만난 ‘인연’



그는 지난해 세종시 지역문화예술지원금을 수혜한데 이어 올해도 사업에 선정, 현재 청소년 장편소설을 집필학고 있다. 『동숙의 노래』 이후 1년 여 만에 세 번째 책을 내놓는 것이다.


작가의 길을 선택한 계기에는 재밌는 스토리가 있다. 때는 1979년. 가슴에 종양이 생긴 모친과 병원을 오갈 시기였다.

 

“암일지도 모른다”는 의사의 말에 수많은 생각이 들었다. 한창 젊을 나이, 어머니의 죽음을 생각하자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는 이때의 감정을 글로 써 KBS 라디오 프로그램에 투고했다. 다행이 근육이 뭉친 멍울이라는 결과가 나왔지만, 당시 진행자였던 탤런트 강부자는 이 이야기를 듣고 방송도중 펑펑 눈물을 쏟았다.

 

이를 계기로 신문과 방송에 자주 글을 보냈고, 결과가 좋아 방송국으로 직접 상품을 타러 다녔다. 그러던 중 한 PD에게서 “글재주가 남다르니 문창과에 들어가 본격적인 글공부를 해보라”는 조언을 들었고, 결국 1993년 숭의여대 문창과에 입학, 1997년 『21세기 문학』으로 등단까지 하게 됐다.

 

지역 문화예술 발전, '예술인 타운하우스’ 조성 제시


끝으로 그는 "백담사 만해마을, 원주 박경리 토지 문화관, 담양의 글을 낳는 집, 증평의 21세기 문학관 등 다수의 창작 집필실을 봐 왔다"면서 "이제는 레지던스를 넘어 예술인들이 안정적으로 거주·생활할 수 있는 타운하우스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세종시는 아직 개발 중인 도시기 때문에 장기적인 예술인 마을을 조성할 수 있다는 것. “타운하우스야말로 예술인들의 유입과 지역 문화예술 발전에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는 게 그의 전언이다.


인적·물적 인프라가 풍부한 서울을 떠나 정착한 세종. 그곳에는 그의 발자취를 따르는 하나뿐인 아들과 등단을 꿈꾸는 제자들이 있다. 그가 꿈꾸는 ‘타운하우스’는 이들을 위한 선배 작가로서의 소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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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bit 2016-05-08 22:52:38
저도 김세인 작가님의 동숙의 노래 단편집을 읽어 보았습니다.
비틀거나 꼬지 않고 우리의 삶을 수채화처럼 투명하게 보여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없다 있으니까 있다 없으니까> 러는 작품이 특히 아름다웠던것 같습니다.
준비하고 계시는 청소년 소설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대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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