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은 한국어 사랑, 한국인은 외국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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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은 한국어 사랑, 한국인은 외국어 사랑?
  • 라창호
  • 승인 2016.04.24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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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창호의 허튼소리 | 우리말과 한국인의 모순



오래 전에 터키를 여행할 때 느꼈던 일이다.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선 이스탄불은 볼 것도 많았다. 성 소피아 성당도, 블루모스크도 그 규모가 웅장했다. 그 옛날에 어떻게 건축했는지, 특히 지붕은 어떻게 그렇게 큰 아치형으로 허물지 않고 만들었는지 신기할 뿐이었다.


로마시대 지하 물 저장고도 지금까지 물이 차 있을 정도로 잘 보존되고 있음에 놀라웠다. 톱카프스궁(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모세의 지팡이’, 3000년 전 ‘다윗왕의 칼’ 등 실물을 보노라면 무종교인데도 짜르르한 느낌이 왔다.


실크로드의 육지 종착지라는 그랜드 바자르를 보고는 그 큰 규모와 온갖 상품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시장 내 무심코 들어섰다가 이리저리 오가다보면 자칫 길을 잃기 십상이고, 들어왔던 입구를 찾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그런데 여기서 한국 사람인지 터키 사람인지 구분을 못할 정도로 한국말을 잘하는 터키 사람을 만났다. 푸른 색깔의 터키석을 파는 상인이었다. 상점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그는 한국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었다. 한 마디로 한국말을 너무 잘했다.


그는 귀고리, 팔찌, 목걸이 같은 터키석을 파는 사람이었다. 누군가 물건 값을 좀 심하다시피 깎으려면 “아이고 참, 그렇게 막 깎으면 난 뭐 먹고 살라고”, “하이고, 무지하게 깎으려고 하네” 등 우리말을 참 구수하게 잘했다.


처음에 필자는 단지 동료들이 사는 것을 구경만 하려고 했다가 그 상인의 말이 하도 정겹고 능청스러워서 한두 가지 구입할 수밖에 없었다. 외국에서 한국말을 잘하는 사람을 만나면 정이 가고 반갑다. 같은 관광지에서 한국 사람들끼리 마주치는 것도 반갑지만, 외국인이 스스럼없이 우리말 잘하는 것을 보면 더 반갑다. 물건을 팔아야하는 상인으로서 부득이 한국말을 배웠거나 자연스럽게 깨쳤다 해도, 그 와는 알 바 없이 반갑고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그가 한국말을 잘하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관광을 위해 터키를 많이 찾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세계 각국 사람들이 한국말을 배우려는 열풍이 분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이제 잘 사는 나라로 세계에 많이 알려졌고, K팝이니 드라마니 하는 우리의 우수한 문화가 세계 사람들의 이목을 끌면서 매력적인 나라로 부상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어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중국이나 일본에 국한된 게 아니라 동남아는 물론, 미국 러시아·중동·아프리카·유럽·중남미 등 온 세계 사람들이 배우려 한다. 한국을 오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열 살 어린 아이부터 박사 과정을 밟는 성인에 이르기까지 연령층도 다양하다고 한다.


국립국제교육원이 주관하는 한국어능력시험(TOPIK)에 응시하는 외국인 숫자도 해마다 증가해 작년에만 약 17만5000여 명이 응시했다. 지난. 16일에 전 세계 45개국 164개 지역에서 시행된 제46회 한국어능력시험에도 역대 최다 인원인 7만2295명이 응시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우리나라는 어떤가. 우리는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고마움을 잊고 사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오히려 우리말과 글을 등한시 하고 외래어를 더 즐겨 쓰는 것 같다. 외래어를 섞어 써야 유식하고 잘난 사람으로 잘못 아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자칭 유명 강사라는 사람들의 말 속에는 외래어가 태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구나 사회의 목탁이라고 하는 언론(신문과 방송)에서 쓰는 외래어는 말할 수 없이 수두룩하다. 아예 제목 자체를 영어로 붙이기까지 한다. 예컨대 간단히 ‘법과 생활’하면 될 것을 굳이 ‘Law&Life’라고 한다. 한심한 일이다.


방송도 마찬가지다. 지상파 방송 프로그램 중 ‘내고향 스페셜’, ‘아침 뉴스타임’, ‘뉴스 투데이 1·2부’, ‘모닝와이드 1·2·3’, ‘멜로 다큐’, ‘굿모닝 A’, ‘JTBC News 아침&’ 등등. 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언론의 하는 짓들이 참 어이없다. 그러면서 사회의 목탁이니 나침판이니 한다.


언론부터 이러니 사회도 마찬가지다. 아파트 이름도 외래어로 지어야 그럴 듯해 보이는지 온통 외래어 투성이다. 점포나 상점의 이름에서도 아름다운 우리말을 찾아보기 힘들다.


어느 날 옛 충남도청 앞에서 대전역으로 통하는 지하상가를 걸으며 점포 이름들을 살펴봤더니 우리말 찾기가 정말 힘들 정도였다. 특이한 이름이라 기억나는 ‘화장실 옆집’, ‘미대 언니’ ‘물망초’ 등 몇 가지 이름만이 겨우 기억된다.


사회가 이래서는 안 된다. 오히려 외국인들은 한국이 좋아 우리말을 배우려고 혈안인데, 우리는 외국어를 아무 거리낌 없이 쓴다면 어불성설 아닌가. 외래어 중 이미 우리말화해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좋은 우리말을 골라 써야 마땅하다. 일부러 유식한 체하며 외래어를 써 우리말의 고귀함을 잃게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올바르게 배워 막상 한국에 와보니 한국말이 국적불명의 말이 돼 있거나, 여러 나라 말과 섞어 쓰이는 잡탕말이 돼 있다면 알아듣기도 힘들겠지만 얼마나 실망할까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말은 우리 스스로가 지키고 보존해 나가야 한다. 필요하면 ‘우리말의 순수성 보존 및 사용과 관련한 입법’ 조치도 있어야 할 것이다. 오히려 외국인이 한국어를 사랑하고, 한국인은 외국어를 선호한다는 우스운 꼴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 고운 우리말을 소홀히 하지 말고 꾸준히 지켜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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