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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인간의 역사가 함께 만든 완벽한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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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인간의 역사가 함께 만든 완벽한 아름다움
  • 이석원
  • 승인 2016.05.25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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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뿐 숨으로 유럽을 걷다 (5) |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1991년 10월, ‘살아있는 것이 행복하다’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프랑스의 저명한 저술가 장 도르메송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유럽의 가장 위대한 유산’이라고 생각하던 크로아티아 남부의 작은 항구 도시 두브로브니크(Dubrovnik)가 세르비아(유고 연방) 해군에 의해 폭격을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아일랜드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가 “지상에서 천국을 찾고자 하면 두브로브니크로 가라”고 했고, 영국의 시인 바이런이 ‘아드리아해의 진주’라고 불렀던 바로 그곳이 처참한 무차별 폭격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장 도르메송은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자신이 속한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다른 회원들을 불러 모았다. “과거 에밀 졸라가 드레퓌스 대위를 구했던 것처럼 우리가 전쟁의 참화 속에서 유럽의 보석을 구해내자”고 설득한 것이다. 장 도르메송이 제안한 것은 유럽의 지성들이 낙하산을 타고 두브로브니크로 낙하를 하자는 것. 그런다면 차마 세르비아군이 더 이상 폭격을 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 유명한 ‘두브로브니크 인간 사슬’을 제안한 것이다. 이 제안에 당시 78세였던 원로 문인 장 프랑스와 드니오가 동참을 선언했다.




하지만 계획은 성사되지 못했다. 낙하산을 타 본 경험도 없는 지식인들에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 도르메송은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유럽을 대표하는 지성 13명과 함께 10월 24일 범선 ‘크릴라 두브로브니카’를 타고 아드리아해를 통해 두브로브니크로 입항한 후 인간 사슬을 만들기로 했다. 하지만 두브로브니크 해안을 둘러싸고 있던 서슬 퍼런 세르비아 해군이 이들의 입항을 허용할리 만무했다. 결국 장 도르메송은 두브로브니크의 찬연한 성곽을 바다에서 바라만 보다가 눈물을 흘리며 뱃머리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소식은 전 세계로 타전됐다. 다음날 장 도르메송은 TV에서 “유럽의 선진국들이 유럽 문명과 예술의 상징인 두브로브니크에 대한 폭격을 중지시키지 못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외쳤다. 그러자 유럽 각 국의 지성들은 물론 국가 지도자들도 장 도르메송의 외침에 반응했다. 유네스코의 ‘두브로브니크 폭격 중지 호소문’이 유고 연방에 전달됐고, 미국 등 다른 서방 국가들도 유고 연방에 대해 폭격 정지를 요구하면서 외교적인 압박을 가했다.




불과 25년 전의 역사, 이른바 탈냉전 시대 이후 벌어진 가장 참혹한 내전으로 알려진 유고 내전의 포화 속에 처참히 파괴됐던 ‘아드리아해의 진주’ 두브로브니크. 그러나 기적은 신이 아닌 인간 스스로의 몫이었다. 유네스코가 눈물을 머금고 ‘사라질 위기에 처한 세계문화유산’ 리스트에 두브로브니크를 올려놓았지만 두브로브니크 시민들은 팔을 걷어 부치고 바짓가랑이를 움켜주고 도시를 재건했다. 그래서 두브로브니크는 가장 아름다운 세계의 문화유산인 것이다.


총 길이 1949m 가장 넓은 곳의 두께는 6m에 이르는 완벽한 요새이자 인간에 의한 기적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힘이 된 두브로브니크 성벽. 그 위에 올라 찬란하게 빛나는 아드리아해를 바라보고 있으면 아무 이유없이 눈물이 흐른다. 이것도 ‘스탕달 신드롬’일까? 세상에 흔하디 흔하게 널린 바다지만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파란 코발트빛 아드리아해를 보고, 다시 반대편 성 안쪽의 구시가를 보면 극명하게 대비되는 짙은 원색의 향연 위로 오버랩 되는 25년 전의 역사가 눈물을 자극하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도 아름다운 바다를 지닌, 이처럼 찬란한 문화와 예술이 숨 쉬는 도시는 그저 겉으로 보이는 지극한 아
름다움 때문에 위대한 것이 아니다. 자연이, 그리고 인간의 이기심이 할퀴고 지나간 자리에 이 아름다움을 지켜 내려는 인간의 고단한 노력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1667년 대지진으로 성벽만 남긴 거의 대부분의 도시가 파괴됐지만 사람들은 다시 그 폐허 위에 중세의 찬란한 도시를 재건했다. 그러나 300년을 조금 넘겨 이번에는 전쟁의 포화 속에 도시는 처참하게 무너졌다. 스트라둔 대로의 동쪽 끝, 필레문 안쪽에 있는 프란치스코 수도원에는 지금도 세르비아 해군의 포격의 흔적이 선명히 남아 있다. 프란치스코 수도원 뿐 아니라 성 블라이세 성당이며 성모승천 대성당, 스폰자 궁전과 렉터 궁전에도 작은 포탄 자욱이나 총알 자국을 찾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구시가의 좁은 골목길에서 만난 허리 굽은 노인은 “석달 동안 단 하루도 포탄이 도시에 떨어지지 않은 적이 없다”고 얘기하면서 눈물이 그렁거린다. 서른 살 쯤 돼 보이는 젊은 청년의 어깨를 두드리며 “이 아이가 그때 아주 어렸었는데, 지금도 자다가 포탄 떨어지는 소리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깨곤 한다”며 트라우마를 이야기한다.


그처럼 참혹한 전쟁을 겪은 이들이지만, 이제는 유럽은 물론 미국과 중국, 그리고 가장 많은 한국의 여행자들을 맞아 아드리아해를 품은 맑고 밝고 신선한 표정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보면 ‘기적은 이 도시 뿐 아니라 이들의 얼굴에 가득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전쟁을 겪는 것도 인간의 몫이지만 이를 극복하는 것도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힘이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도시가 두브로브니크다.




신이 창조한 지구상의 모든 자연은 아름답다. 그것이 사막이건, 황량한 들판이건, 또는 극한의 환경을 품은 극지건, 인간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은 모두가 아름답다.


인간의 손길이 많이 닿을수록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편함만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북극의 빙하도, 나미브 사막의 붉은 모래도, 그랜드캐년이나 이과수 폭포도.


그러나 인간이 살지 않는 아름다움보다 어쩌면 더 유의미한 아름다움은 사람이 살고 만들고 극복한 아름다움이다. 그래서 두브로브니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신과 인간의 합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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