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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뜨기 오드리 헵번'의 사투리를 바꾼 언어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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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뜨기 오드리 헵번'의 사투리를 바꾼 언어학자
  • 김학용 주필
  • 승인 2016.11.22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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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성철재 충남대 교수에게 들어 본 음성학




짐을 싣는 ‘트럭(truck)’의 영어 발음은 한국인에게도 그리 어렵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한국인 발음은 ‘본토 발음’과 여전히 차이가 있다. 세종대왕 때 영어를 배웠다면 적어도 트럭 발음은 원어민에 더 가깝게 할 수 있었다. 성철재 충남대 언어학과 교수는 작년 EBS와 실험을 통해 이를 확인시켜줬다.


스마트폰은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 대답하며 명령을 수행하는 ‘개인비서’ 역할도 한다. 가령 처음 방문하는 도시에서도 ‘비서’한테 ‘이 근방에 점심 먹을 곳 없나?’라고 말하면 ‘주인’의 취향에 맞춰 즉각 알려주는 시대가 이제 열리고 있다. 주인이 사투리를 써도 억양이 독특해도 비서는 거의 알아듣는다. 모두 말소리 관련 공학 기술의 덕이다. 성 교수에게 언어학의 한 분야인 음성학(音聲學)에 대해 들어봤다.


-음성학은 어떤 분야를 다루나.


“말을 하지 않고 표현할 수 있는 언어는 없다. 그 말이 모두 연구 대상이다. 음성은 입에서 나와 공기를 통해 음파 형태로 전달되는데, 전 과정이 음성학의 대상이다. 현대 음성학에는 과학이 굉장히 많이 들어가 있다.”


-음성공학은 무언가.


“말소리를 공학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다. 대덕특구에 있는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소)에서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음성공학 연구를 수행한다. 주로 합성기 개발과 인식기 개발이다. 텍스트 정보를 주면 컴퓨터가 소리를 만드는 게 합성기술이다.”


-문장을 읽어주는 프로그램이 있던데.


“문장을 말(스피치)로 바꾸는 합성기술이다. TTS(Text To Speech)라고 한다. 이미 많이 발달돼 있다. 얼마나 사람 목소리에 가깝게 가느냐가 문제다. 전달력이 좋으면서도 미묘한 억양까지 표현하는 매력적인 목소리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 분야 기술은 거의 완성단계에 와 있다.”


-음성인식 개발은 어디까지 와 있나.


“스마트폰에 대고 말을 하면 문장으로 바꿔준다. 노래를 불러도 그게 무슨 노래인지 금방 알아낸다. 그러나 사람마다 음성의 편차가 크다. 가령 ‘가’라는 글자를 읽은 경우 어떤 사람은 ‘카’처럼, 어떤 사람은 ‘까’처럼 발음하기 때문에 컴퓨터도 헷갈린다. 이땐 몇 개의 문장을 후보군으로 제시해 이용자가 선택하도록 한다.”


“운전 중에 ‘속도 줄여!’ 하는 명령은 즉각 시행돼야 한다. 이런 명령은 소음에도 강력해야 하고 오차가 없어야 되지만 차안은 시끄럽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음에도 강한 음성인식기가 개발되고 있다.”
-음성학으로 언어 치료도 가능한가.


“음악치료는 음악을 ‘이용’해 치료하는 것이지만 언어치료는 사람의 ‘언어를’ 고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감자 놀자 가자’라는 말을 ‘감다 놀다 가다’라고 발음한다면 음성학자의 귀에는 이 사람이 두 번째 음절의 파찰음(ㅈ)을 파열음(ㄷ)으로 발음한다는 것을 알아챈다. 그러면 파열음을 파찰음으로 바꿔주는 훈련을 시켜 치료하는 것이다.”


음성학은 언어병리학에도 응용되고 있다. 성 교수와 윤규철 영남대 교수, 강영애 박사(충남대병원 이비인후과 언어치료실)는 최근 음성으로 파킨슨병을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공동으로 개발해 특허를 냈다.


-언어 치료 효과는 좋은가.


“성과가 좋다. 자폐증이나 뇌성마비 다운증후군 아동도 훈련시키면 치료 효과가 좋은 편이다.”


성 교수는 언어 치료의 효과를 말해주는 영화 한 편을 소개했다. 성 교수는 “오드리 헵번이 나온 영화 중 ‘마이 페어 레이디(My fair lady)’에서 헵번은 루마니아를 거쳐 런던 중심부로 들어온 집시의 일원으로 나온다. 커크니(Cockney)라고 하는데, 특유의 하층민 방언을 쓴다. 옥스퍼드 언어학자 히긴스가 사투리가 심한 촌뜨기 여자 헵번을 영국 최상층의 표준 영어발음으로 교정할 수 있는지를 놓고 친구와 내기 하는데, 언어교정 교육을 받은 헵번이 완벽한 표준어를 구사하게 된다”고 했다.


-그게 실제로도 가능한 얘긴가.


“영화배우 강동원은 경상도 사람이다. 영화 ‘전우치’에서 경상도 말투가 잘 들리지 않는다. 오드리 헵번의 발음 교육 효과는 실제로도 가능하다. 배우들은 피나는 노력으로 교정한다.”


-음성학의 기술적 부분을 외국어 교육에 적용하면 좋겠다


“이미 하고 있다. 말하기와 듣기다. 컴퓨터에서 나오는 원어민의 말을 듣고 따라하면 그 내용이 파형과 억양 궤적으로 표현되며, 관련된 주파수 등의 수치가 나타난다.”


성 교수는 “음성학자가 가르치면 금방 배운다”며 기자에게 4개의 영어 발음기호를 놓고 즉석에서 발음 교육을 했다. 성 교수의 지도를 받으니 까다로운 발음도 쉽게 느껴졌다. 그는 “외국어 교육은 가르치는 사람이 발음의 음가(音價)를 제대로 알고 있어야 교육 효과가 좋다”고 했다.


-이젠 ‘소리도 보는 시대’라고 하는데 무슨 말인가.


“디지털 신호처리 기술(DSP)이 발달하면서 귀로만 듣던 소리를 눈으로 볼 수 있게 됐다. 소리의 파형(wave form)을 보면 어느 부분이 모음인지, 자음인지 대략 알 수 있다. 이를 더 세밀히 알려면 공명주파수 정보와 에너지, 시간 정보를 동시에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스펙트로그램으로 관찰을 해야 한다.”


작년 EBS는 한글날 특집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성 교수와 함께 ‘아래 아(·)’의 음가를 확인해 봤다. 음성학을 동원해 ‘아래 아’ 소리를 컴퓨터로 만들어 본 것이다. 국어시간에 세종대왕 때는 ‘아래 아’라는 모음이 있었고 아와 오, 또는 아와 어의 중간 정도의 발음이라고 배웠지만 그 소리가 어떤 건지는 들어보지 못했다.


-음성학적으로 ‘아’와 ‘오’의 중간 소리를 낼 수 있나.


“낼 수 있다.”(성 교수는 직접 아래 아 발음을 내 들려줬다.)


-‘어’로도 들리고 ‘오’로도 들린다.


“‘아’ ‘어’ ‘오’의 중간쯤 발음이다. 한글에는 그런 모음이 없고, 영어에는 2가지(, )가 있다.”


성 교수는 EBS 아나운서의 ‘아’ ‘어’ ‘오’ 발음을 이용해 ‘아래 아’의 공명주파수를 찾고 해례본의 설명에 맞춰 ‘아래 아’를 만들어냈다. 훈민정음 해례본에는 ‘아래 아’를 발음할 때 입술의 벌림 정도와 혀의 위치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다. 그 음가를 영어 ‘트럭(truck)’의 ‘ㅓ’에 해당하는 부분과 ‘코트(caught)’의 ‘ㅗ’에 해당하는 부분에 끼워 넣어 합성어를 제작했다. 그 합성어와 한국인 아나운서의 원래 발음을 원어민에게 들려주고 어느 게 더 정확한 발음인지 물었다. 외국인 10명 중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합성어가 더 영어다운 발음으로 들렸다. 아래아가 영어 발음 기호 [] 혹은 []와 음가가 공유된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아래 아’가 남아 있었다면 한국인들은 영어 발음을 좀 더 쉽게 배울 수 있었을 것이다.


-요즘 주목받고 있는 음성학 기술은.


“구글의 음성인식기술이 나오고 애플의 시리(Siri)와 같은 서비스가 나오기 전까지는 국내 음성공학 시장은 침체돼 있었다. 요즘 다시 이 분야 연구가 활기를 띠고 있다. 다문화 집단이나 제2외국어로 한국어를 배우려는 학습자들을 위한 학습 소프트웨어 개발과 평가 소프트웨어 개발 등이 주요 관심사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 음성학 수준을 선진국과 비교하면 어느 수준인가.


“세종대왕 때 한글 속에 들어있는 음성학 지식은 당대 최고 수준이었다. 하지만 현대 한국의 음성학(특히 음향음성학)은 선진국과 꽤 차이가 있는 편이다. 주요 이론은 거의 유럽(특히 영국 스웨덴)과 미국에서 이뤄져 왔다. 그러나 음성학은 데이터를 통해 이론을 창출하는 귀납적인 경험 학문의 측면도 있어 서구의 이론이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니다. 착실하게 데이터를 구축하고 이를 이용해 한국어의 음성 특징을 잘 기술하는 작업이 더 중요할 수 있다.”



:: 성철재(成喆宰) 교수 약력


- 서울대 인문대 언어학과 및 동대학원 석·박사 졸업
-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연구원
- 충남대학교 언어학과 교수
- 미국 UCLA 언어학과 객원연구원
-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초빙연구원
- 충남대학교 부설 언어치료센터장
- 미국 인디애나대학교 겸임교수
- 한국음성학회 상임이사
- 한국언어학회 편집위원
- 저술 : <음성학과 공학의 만남>, <비음과 비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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