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에서 사랑하고, 행복은 남겨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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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에서 사랑하고, 행복은 남겨두라
  • 이석원
  • 승인 2016.05.25 13:4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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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쁜 숨으로 유럽을 걷다 2 | 이탈리아 피렌체


“꿈에서 본 것을 말해주랴?

햇빛 반짝이는 고요한 언덕에

어두운 나무숲과 누런 바위

그리고 하얀 별장 골짜기에 놓인 도시.

하얀 대리석 성당들이 있는

도시 하나가 나를 향해 빛을 발한다.

그곳은 피렌체 지금 그곳 좁은 골목에 둘러싸인

오래된 뜰 안에서 내가 두고 온 행복이

아직 나를 기다리고 있으리.”


독일의 시인 헤르만 헤세는 그의 시 ‘북쪽에서’에서 피렌체(Firenze)를 ‘두고 온 행복’이라고 얘기한다. 그리고 그 ‘두고 온 행복’이 아직도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런데 그 믿음이 어찌 헤세만의 것일까? 피렌체는 그곳으로 향할 때도, 또 그곳을 떠나올 때도 늘 그곳에 나의 행복 몇 개를 두고 오게 한다. 그 ‘두고 온 행복’이 없으면 다시는 그 도시에 갈 수 없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그리고 그곳에 다시 갔을 때 그 ‘두고 온 행복’을 다시 만난다는 그윽한 설렘 때문에.


아르노(Arno) 강 위로 태양이 내려온다.

강 뒤로 끌려들어가는 태양이 비명을 지른다. 태양의 비명에 놀란 피렌체는 가뜩이나 꽃처럼 붉은 도시의 지붕들이 더 선명하게 소스라친다. 세상에 그 어떤 자연이라서 이처럼 아름다운 황혼을 보여줄까? 사람이 만든 것과 하느님이 만든 것 중 더 아름다운 것을 굳이 찾아야 한다면 하느님이 만드신 것에 사람의 손이 더한 것이라고 얘기하면 위선일까? 하지만 하느님이 만든 자연에 더해진 사람이 만든 피렌체는 감동이 너무 벅차 숨을 쉬는 것이 부끄러워질 지경이다.


“피렌체의 두오모는 연인들의 성지래.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곳, 언젠가 함께 올라가 주겠니?”
“언제?‘
“글쎄...”
“한 10년 뒤 쯤?”
“약속해 주겠어?”
“좋아. 약속할게”

에쿠니 가오리와 츠지 히토나리의 동명소설을 나가에 이사무 감독이 2001년 스크린으로 옮겨놓은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의 이 짧은 영화 대사는 이후 피렌체를, 특히 피렌체의 심장인 두오모(Duomo) 쿠폴라를 ‘세계 연인들의 성지’로 만들어버렸다.


“피렌체의 두오모는 연인들의 성지래.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곳”이라는 대사로 영화가 시작하면, 조용하고 낮게 깔리는 피아노 소리. 영화의 주 테마곡인 요시마타 료의 ‘Whole Nine Yards’가 이내 관현악으로 바뀌면서 남쪽에서부터 헬기로 항공 촬영된 피렌체의 전경은 왜 사람들이 그 많은 세월동안 피렌체를 꿈꾸고, 또 그곳에서 사랑하고자 하는 지를 보여준다. 붉은 도시의 지붕들을 지나 카메라가 아르노 강을 비추면서 피렌체의 아름다움이 절정에 이르면 정체모를 깊은 탄식의 신음을 내뱉게 한다.


몽환적인 아일랜드 분위기 물씬 나는 뉴에이지 뮤지션 엔야(Enya)의 ‘켈츠(Celts)’가 깔리면서 쥰세이는 자전거를 타고 피렌체 곳곳을 달린다. 하늘에서 본 피렌체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뿜어내는 피렌체의 골목골목은 한껏 퇴색된 돌바닥과 건물 외벽이 따스하게 달려든다.


그러다가 갑자기 넓게 트이는 두오모 광장, 사랑스러운 아르노 강변, 그리고 베키오 다리(Ponte Vecchio)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그라지에 다리(Ponte Grazie)를 건너 다시 좁은 골목들. 쥰세이를 따라 움직이는 카메라는 피렌체의 가장 평범하지만 그래서 가장 친근한 공간들을 훑어 내리며 양화 ‘냉정과 열정사이’를 따스하게 조명한다.




이탈리아에서는 그 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중심이 되는 주교좌 성당을 ‘두오모’라고 부른다. 피렌체 두오모의 정식 명칭은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Santa Maria del Fiore) 대성당’ . ‘꽃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이라는 뜻이다. 피렌체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처럼 화훼산업이 발달해서 꽃의 도시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다. 순백의 대리석과 붉은 지붕,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가 1년 365일 곱고 찬란한 꽃으로 피어있기 때문에 꽃의 도시라고 부르는 것이다.


두 사람의 교행도 힘겨운 좁고 어두운 계단 464개를 걸어 쿠폴라의 맨 위로 오르려는 것은 꽃봉오리의 일부가 되기 위함이다. 그리고 두오모와 함께 화사하게 핀 수백, 수천 송이의 피렌체 꽃들을 내려다보고자함이다. 붉은 지붕들이 온 도시를 덮고 있는 것을 보고, 피렌체가 왜 진정 아름다운 도시인지 깨닫기 위함이다. 그러면서 그 꽃봉오리에는 쥰세이와 아오이의 사랑만큼 곱고 애틋한 사랑이 수없이 많음을 확인하기 위함이다.


미켈란젤로 광장(Piazelle Michelangelo)에서 카메라 줌렌즈를 잔뜩 당기면 쿠폴라의 전망대가 거의 수평으로 보인다. 그곳에 오른 수많은 연인들은 아무런 거리낌도, 누군가가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의식도 없이 464개의 좁고 가파른 계단을 힘겹게 올라온 이유를 보여준다. 동서양 문화의 차이는 있을망정, 그들이 표현하는 제 나름대로의 사랑의 행위는 ‘보기에 아름다운’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프랑스의 대문호 스탕달은 피렌체를 보고 “이 도시의 아름다움은 사람을 병들게 하고, 정신을 잃게 한다”고 했다. 그리고 독일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피렌체는 베네치아 처럼 스쳐 지나가는 사람에게는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게 모든 종류의 사랑을, 피렌체는 그 사랑을 소중하게 품어준다. 이미 시작한 사랑의 완성일 수도 있고, 차마 시작하지 못한 사랑을 시작하게 해 줄 수도 있다. ‘꽃의 도시’인 피렌체는 단언컨대 ‘사랑의 도시’다. 죽기 전에 그곳에서 사랑을 해 보는 것. 피렌체를 아는 모든 이들의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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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me Coffee 2016-01-10 21:33:36
지난달 아내 베로니카와 이태리여행을 기억해봅니다.
그때 여러설명을듣기는 했지만 기억이 아나기에 검색을 해보니 하나둘씩 떠오르네요. 하와이도가고싶지만 이태리 계획을세워서 가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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